LAWSUN 공지사항

2003/09/16 (18:38) from 64.5.159.51' of 64.5.159.51' Article Number :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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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탈과 민족의 봉기
가쓰라·태프트 밀약 내용(1905. 7)

첫째, 일본은 필리핀에 대하여 하등의 침략적 의도를 품지 않으며,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확인한다.

둘째, 극동의 평화를 위해 미·영·일 삼국은 실질적인 동맹 관계를 확보한다.

셋째, 러·일 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한다.




제 2 차 영·일 동맹 내용(1905. 8)

영국은, 일본이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이익을 옹호, 증진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통제 및 보호의 조치를 한국에서 행하는 권리를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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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의 피탈


일본국정부와 한국정부는 양제국을 결합하는 이해공통의 주의를 공고히 하고자 한국의 부강의 실(實)을 인정할 수 있는 때에 이르기까지 차목적(此目的)을 위하여 아래의 조관(條款)을 약정함.

제1조 일본국정부는 재동경 외무성을 경유하여 금후에 한국이 외국에 대하는 관계 및 사무를 감리(監理)·지휘할 것이요, 일본국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는 외국에 있어서의 한국의 신민(臣民) 및 이익을 보호할 것임.

제2조 일본국정부는 한국과 타국간에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는 임무에 당하고 한국정부는 금후에 일본국정부의 중개에 경유치 않고서 국제적 성질을 가진 하등의 조약이나 또는 약속을 하지 않기를 상약(相約)함.

제3조 일본국정부는 기(其) 대표자로 하여금 한국 황제폐하의 궐하(闕下)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전혀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기 위하여 경성에 주재하고 친히 한국 황제폐하에게 내알하는 권리를 가짐. 일본국정부는 또한 한국의 각 개항장급, 기타 일본국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역에 이사관(理事官)을 설치하는 권리를 갖되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하여 종래 재한국 일본영사에게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아울러 본 협약의 조관을 완전히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일체의 사무를 장리(掌理)할 것임.

제4조 일본국과 한국과의 사이에 현존하는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하지 않는 한 모두 다 그 효력을 계속하는 것임.

제5조 일본국정부는 한국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하기를 보증함.

위 증거로 하여 하명(下名)은 각 본국 정부에서 상당한 위임을 받아 본 협약에 기명 조인함.

광무 9년 11월 17일 외부대신 박제순 인

명치 32년 11월 17일 특명전권공사 임권조 인

(<개항 100년연표·자료집> 을사조약)


한국 황제폐하와 일본국 황제폐하는 양국간의 특수하고 치밀한 관계를 회고하여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코자 하는 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만 같지 못한 것을 확신하여 이에 양국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하기로 결(決)하고 일본국 황제폐하는 통감 자작 사내정의(寺內正毅)를, 한국 황제폐하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각각 전권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함. 이 전권위원은 회동협의(會同協議)한 후 아래의 제조(諸條)를 협정함.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前條)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전연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함을 승낙함.

제3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한국 황제폐하·태황제폐하·황태자폐하 그리고 후비(后妃) 및 후예로 하여금 각기 지위에 응하여 상당한 존칭·위엄 그리고 명예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보지(保持)하기에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함.

제4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 이외의 한국황족과 그 유예에 대하여 각기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공여(供與)할 것을 약속함.

제5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있는 한인으로서 특히 표창을 행함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하여 영작(榮爵)을 수여하고 또 은금(恩金)을 여(與)할 것.

제6조 일본국정부는 전기 병합의 결과로서 전연 한국의 시정을 담임하고 동지(同地)에 시행하는 법규를 준수하는 한인의 신체와 재산에 대하여 충분한 보호를 하며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할 것.

제7조 일본국정부는 성의와 충실로 신제도를 준중(遵重)하는 한인으로서 상당한 자격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하는 한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 관리로 등용할 것.

제8조 본 조약은 일본 황제폐하와 한국 황제폐하의 재가를 경(經)한 것으로 공포일로부터 시행함.

위 증거로 양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기명조인하는 것이다.

융희 4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 완용 인

명치 43년 8월 22일 통감 자작 사내정의 인

(<조선총독부관보> 제1호 한일합병조약)


 

경제적 수탈
 



제1조 토지의 조사 및 측량은 본령에 의거한다.

제2조 토지는 그 종류에 따라 하기의 지목(地目)을 정하여 지반을 측량하여 각 구역마다 지번(地番)을 붙인다. 단 제3호에 게시된 토지의 경우는 지번을 붙이지 않을 수 있다.

1. 전·답·대(垈)·지소(池沼)·임야·잡종지

2. 사사지(寺社地)·분묘지·공원지·철도용지·수도용지(水道用地)

3. 도로·하천·구거(溝渠)·제방·성첩(城堞)·철도선로·수도선로

전항의 규정에 의하여 조사·측량해야 하는 임야는 다른 조사 및 측량지 사이에 게재하는 것에 한한다.

제3조 지반의 측량에 기록된 평이나 보(步)를 지적(地積)의 단위로 한다.

제4조 토지의 소유자는 조선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그 주소·성명 또는 명칭 및 소유지의 소재·지목·자번호·사표(四表)·등급·지적·결수를 임시토지조사국장에게 신고해야 한다. 단 국유지의 경우는 보관관청이 임시토지조사국장에게 통지해야 한다.

제5조 토지의 소유자 또는 임차인(賃借人)과 그 외 관리인은 조선총독이 정하는 기간 내에 그 토지의 사방의 경계에 표지를 세워 지목 및 자번호와 아울러 민유지에 있어서는 소유자의 성명 또는 명칭을, 국유지에 있어서는 보관관청의 이름을 거기에 기재해야 한다.

제6조 토지의 조사 및 측량을 하도록 된, 조사 및 측량지역내의 토주(土主)로서 2인 이상의 총대(總代)를 선정하여 조사 및 측량에 관한 사무에 종사시킬 수 있다.

제7조 토지의 조사 및 측량을 위하여 마땅히 필요한 때는 해당관리는 토지의 소유자·이해관계인, 또는 그 대리인으로서 실지에 입회시키거나, 토지에 관한 서류를 소지한 자에게 그 서류의 제출을 명할 수 있다.

제8조 토지의 조사 및 측량을 위하여 필요한 때는 해당관리는 토지에 들어가 측량표를 설치하거나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다.

전항의 경우에는 해당관리는 미리 토지 또는 장애물의 소유자 또는 점유자에게 통지해야 한다.

제1항의 경우에 발생한 손해는 그것을 보상해야 한다. 보상금액에 관해 불복하는 자는 보상금액의 통지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조선총독의 재정(裁定)을 구할 수 있다.

제9조 임시토지조사국장은 지방토지조사위원회에 자문하여 토번의 소유자 및 그 한계를 사정(査定)한다.

임시토지조사국장은 전항의 사정(査定)을 했을 때는 30일간 그것을 공시한다.

제10조 전조 제1항의 사정은 제4조 규정에 의한 신고 또는 통지 당일의 현재에 의하여 그것을 해야 한다. 단, 신고 또는 통지를 하지 않은 토지에 대해서는 그 사정 당일의 현재에 의한다.

제11조 제9조 제1항의 사정에 대해 불복하는 자는 동조 2항의 공시기간 만료 후 60일 이내에 고등토지조사위원회에 신청하여 그 재결을 구할 수 있다. 단, 정당한 사유없이 제7조 규정에 의한 입회를 하지 않은 자는 차한(此限)에 부재(不在)함.

제12조 고등토지조사위원회는 당사자 이해관계인·증인 또는 감정인을 소환하거나 재결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소지한 자에게 그 서류의 제출을 명할 수 있다.

제13조 고등토지조사위원회의 재결은 이해를 제시한 문서를 가지고 하며 그 등본을 불복을 신청한 자에게 교부해야 한다.

전항의 재결은 그것을 공시한다.

제14조 고등토지조사위원회에서 재결을 한 때는 재결서의 등본을 첨가하여 임시토지조사국 및 지방관청에 통지한다.

제15조 토지 소유자의 권리는 사정의 확정 또는 재결에 의하여 확정한다.

제16조 사정으로 확정된 사항 또는 재결을 거친 사항에 대해서는 아래의 경우에 있어서, 사정을 확정하거나 재결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고등토지조사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단, 벌(罰)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판결이나 확정이라고 할 수 있는 때에 한한다.

1. 벌할 수 없는 행위에 기인하여 사정 또는 재결을 한 때.

2. 사정 또는 재결의 빙거(憑據)라고 할 수 있는 문서가 위조 또는 변조된 것일 때.

제17조 임시토지조사국은 토지대장 및 지도를 조제(調製)하고 토지의 조사 및 측량에 대해 사정으로 확정한 사항 또는 재결을 거친 사항을 그것에 등록한다.

제18조 제4조의 사항에 대해 허위의 신고를 하는 자는 800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9조 정당한 사유없이 제4조의 신고를 않거나 제7조 또는 제12조의 명령에 위반하는 자는 30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科料)에 처한다.

(<개정 조선제재법규> 토지조사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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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조선청년독립단은 아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 만국의 전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4천3백년의 장구한 역사를 유한 오족은 실로 세계 고민족(古民族)의 하나이라. 비록 유후호중국의 정삭(正朔)을 봉한 사는 유하얏스나 차는 양국 왕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하얏고 조선은 항상 오족의 조선이고 일차도 통일한 국가를 실(失)하고 이족(異族)의 실질적 지배를 수한 사 무하도다.……

또 합병이래 일본 조선통치 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反)하여 오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대한 고대의 비인도적 정책을 습용하여 오족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등을 불허하며 심지어 신교의 자유, 기업의 자유까지도 불소(不小)히 구속하며 행정·사법·경찰 등 제(諸)기관이 조선민족의 사권까지도 침해하며 공사간에 오인과 일본과의 우열의 차별을 설(設)하며 오족에게는 일본인에 비하야 열등한 교육을 시(施)하야서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일본인의 사용자로 성케 하며 역사를 개조하야 오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하고 능모(凌侮)하며 소수를 제(除)한 이외는 정부 제(諸)기관과 교통·통신·병비(兵備) 등 제(諸)기관에 전부 혹은 대부분 일본인을 사용하야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국가생활에 지능과 경험을 득(得)할 기회를 부득케 하니 오인은 결코 여차한 무단전제(武斷專制) 부정·불평등한 정치 하에서 생존과 발전을 향유(享有)키 불능한지라. 그뿐더러 원래 인구과잉한 조선에 무한으로 이민을 장려하고 보조하야 토착하니 오족은 해외에 유리(流離)함을 불면(不免)하며 정부의 제(諸)기관은 물론이고 사설의 제(諸)기관에까지 일본인을 사용하야 일단 조선인의 부를 일본으로 유출케하고 상공업에도 일본인에게만 특수한 편익을 여하야 오족으로 하야금 산업적 발흥의 기회를 실(失)케 하도다.

여차히 하방면으로 관하야도 오족과 일본과의 이해는 상호배치하야 기해를 수한 자는 오족이니 오족은 생존권리를 위하야 독립을 주장하노라.

최후 동양평화의 견지로 보건대 위협이던 아국(俄國)은 이미 군국주의적 야심을 포기하고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신국가(新國家)의 건설에 종사하는 중이며 중화민국도 역연(亦然)하며 겸하여 차후 국제연맹이 실현되야 다시 군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할 강국이 무할 것이다. 그러할진대 한국을 합병한 최대 이유가 소멸되었을 뿐더러 차(此)로부터 조선민족이 무수한 혁명란을 기(起)한다면 일본에게 합병된 한국은 반하야 동양평화의 요란하고 화원이 될지라. 오족은 정당한 방법으로 오족의 자유를 추구할지나 만일 차로써 성공치 못하면 오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여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야 최후의 일인(一人)까지 자유를 위하는 열혈을 유할지니 어찌 동양평화의 화원이 아니리오. 일병(一兵)이 무한 오족은 병력으로써 일본에 저항할 실력이 무하도다. 일본이 만일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할진대 오족은 일본에 대하야 영원의 혈전을 선하리라. 오족은 구원(久遠)히 고상한 문화를 유하얏고 반만년간 국가생활의 경험을 유한 자라 비록 다년간 전제정치 하의 해독과 경우의 불행이 오족의 금일을 치(致)하얏다 할지라도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의 선진국의 범(範)을 취하야 신국가를 건설한 후에는 건국이래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오족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함이 유할 줄을 신하노라. 자에 오족은 일본이나 혹은 세계 각국이 오족에게 자결의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하며 만일 불연이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야 자유의 행동을 취하야 써 독립을 기성(期成)하기를 선언하노라.

재일본동경조선청년독립단대표

최팔용 윤창석 김도연 이종근 이광수 송계백 김철수

최근우 백관수 김상덕 최근우 백인수 서 춘

결의문

1, 본단은 일한합병이 오족의 자유의사에 출치 아니하고 오족의 생존발전을 위협하고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2. 본단은 일본의회 및 정부에 조선민족대회를 소집하야 대회의 결의로 오족의 운명을 결(決)할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함.

3. 본단은 만국평화회의에 민족자결주의를 오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이 목적을 전달하기 위하야 일본에 주재한 각국 대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해정부에 전달하기를 요구하고 동시에 위원 3인을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함. 이 위원은 기히 파견된 오족의 위원과 일치행동을 취함.

4. 전제항의 요구가 실패될 시에는 일본에 대하야 영원히 혈전을 선(宣)함. 차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오족이 기책(其責)을 임(任)치 아니함.

조선청년독립단대표 (<이광수전집> 권17 2·8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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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하노라. 차(此)로써 세계 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克明)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誥)하여 민족자존의 정권을 영유케 하노라.

반만년 역사의 권위를 위하여 차를 선언함이며 2천만 민중의 성충(誠忠)을 합하여 차를 포명(佈明)함이며 민족의 항구여일(恒久如一)한 자유발전을 위하여 차를 주장함이며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竝進)하기 위하여 차를 제기함이니 시천(是天)의 명명(明命)이며 시대의 대세이며 전인류 공존동생권(共存同生權)의 정당한 발동이라, 천하하물(天下何物)이든지 차를 저지, 억제치 못할지니라.

구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강권주의의 희생을 작(作)하여 유사이래 누천년에 처음으로 이민족 압제의 고통을 당한지 금(今)에 십년을 과(過)한지라. 아(我)생존권의 박상(剝喪)됨은 무릇 기하(幾何)며 심령상 발전의 장애됨이 무릇 기하며 민족적 존영의 훼손됨이 무릇 기하며 신예(新銳)와 독창(獨創)으로 세계문화의 대조류에 기여보비(寄與補裨)할 기연(機緣)을 유실함이 무릇 기하뇨.……

당초에 민족적 요수로서 출(出)치 아니한 양국병합의 결과가 필경 고식적 위압과 차별적 불평과 통계숫자적 허사의 하에서 이해 상반한 양 민족간에 영원히 화식할 수 없는 원구를 거익심조하는 금래실적을 관(觀)하라. 용명과감으로써 구오(舊誤)를 확정하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기인한 우호적 신국면을 타개함이 피차간 원화소복(遠禍召福)하는 첩경임을 명지(明知)할 것이 아닌가. 또 2천만 함분축원의 민(民)을 위력으로써 구속함은 다만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소이가 아닐 뿐 아니라 차로 인하야 동양안위의 주축인 4억만 지나인의 일본에 대한 위구와 시의를 갈수록 농후케하여 그 결과로 동양전국이 공도동망(共倒同亡)의 비운을 초치할 것이 명(明)하니, 금일 오인의 조선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생영(生榮)을 수(遂)케 하는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사로(邪路)에서 출하여 동양 지지자인 중책을 전(全)케 하는 것이며 지나로 하여금 몽침(夢寢)에도 면하지 못하는 불안·공포에서 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동양평화로 중요한 일부를 삼는 세계평화 인류행복에 필요계단이 하는 것이라, 이 어찌 구구한 감정상 문제리오.

아아! 신천지가 안전(眼前)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의 시대가 내하도다. 과거 전세기에 연마장양(鍊磨長養)된 인도적 정신이 바야흐로 신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투사하기 시작하도다. 신춘이 세계에 내하여 만물의 회소를 최촉하는도다. 동빙한설(凍氷寒雪)에 호흡을 폐칩(閉蟄)한 것이 피일시의 세(勢)라 하면 화풍난양(和風暖陽)에 기맥을 진서(振舒)함은 차일시의 세이니 천지의 복운에 제(際)하고 세계의 변조를 승한 오인은 아무 주저할 것이 없으며 아무 기탄할 것 없도다.

아의 고유한 자유권을 호전(護全)하여 생왕의 낙을 포향(飽享)할 것이며 아의 자족한 독창력을 발휘하여 춘만(春滿)한 대계(大界)에 민족적 정화를 결뉴(結紐)할 지로다.

오등이 자에 분기하도다. 양심이 아와 동존하며 진리가 아와 병진하는도다. 남녀노소없이 음울한 고소(古巢)에서 활발히 기래(起來)하여 만휘군상(萬彙群象)으로 더불어 흔쾌한 부활을 성수(成遂)케 하도다. 천백세 조령이 오등을 음우(陰佑)하여 전세계 기운이 오등을 외호하나니 착수가 곧 성공이라 다만 전두에 광명으로 매진할 따름이다.

공약삼장

1. 오인의 차거(此據)는 정의·인도·생존·존영(尊榮)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1.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1. 일제의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오인의 주장과 태도로 하여금 어디까지든지 광명정대하게 하라.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사자료집> 기미독립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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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대한민국임시헌장 선포문

신인일치(神人一致)로 중외협응(中外協應)하야 한성(漢城)에 기의(起義)한 지 30유일(有日)에 평화적 독립을 3백여 주에 광복하고 국민의 신임으로 완전히 다시 조직한 임시정부는 항구완전한 자주독립의 복리로 아 자손려민(子孫黎民)에게 세전(世傳)키 위하여 임시의정원의 결의로 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제2조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차(此)를 통치함.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無)하고 일체 평등임.

제4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신교(信敎)·언론·저작·출판·결사·집회·신서(信書)·주소이전·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함.

제5조 대한민국의 인민으로 공민자격이 유한 자는 선거권 및 피선거권이 유함.

제6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교육·납세 및 병역의 의무가 유함.

제7조 대한민국은 신의 의사에 의하야 건국한 정신을 세계에 발휘하며 진(進)하여 인류의 문화 및 평화에 공헌하기 위하야 국제연맹에 가입함.

제8조 대한민국은 구황실을 우대함.

제9조 생명형(生命刑)·신체형 및 공창제를 전폐함.

제10조 임시정부는 국토회복 후 만 1개년내 국회를 소집함

대한민국 원년 4월 일

임시의정원 의장 이동녕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승만

내무총장 안창호 외무총장 김규식

법무총장 이시영 재무총장 최재형

군무총장 이동휘 교통총장 문창범

정강

1. 민족평등·국가평등 및 인류평등의 대의를 선전함.

2. 외국인의 생명재산을 보호함.

3. 일체 정치범인을 특사(特赦)함.

4. 외국에 대한 권리의무는 국민정부와 체결하는 조약에 일의(一依)함.

5. 절대독립을 서도(誓圖)함.

6. 임시정부의 법령을 위월(違越)하는 자는 적으로 인(認)함.

대한민국 원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독립운동사자료>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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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야 협정 내용(1925. 6. 11.)

 



만주에 있는 한국 독립군을 근절시키기 위하여 중국의 봉천성 경무처장 우진과 조선 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사이에 맺어진 협정이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인의 무기 휴대와 한국 내 침입을 엄금하며, 위반자는 검거하여 일본 경찰에 인도한다.

(2) 재만 한인 단체를 해산시키고 무장을 해제하며, 무기와 탄약을 몰수한다.

(3) 일제가 지명하는 독립 운동 지도자를 체포하여 일본 경찰에 인도한다.

(4) 한국인 취체의 실황을 상호 통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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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0 만세 운동 때의 격문

 





조선 민중아 !

우리의 철천지 원수는 자본·제국주의 일본이다.

이천만 동포야 !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자 !

만세 만세 조선 독립 만세.


광주 학생 항일 운동 때의 격문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 !

검거된 학생은 우리 손으로 탈환하자.

언론·결사·집회·출판의 자유를 획득하라.

식민지 교육 제도를 철폐하라.

조선인 본위의 교육 제도를 확립하라."


"용감한 학생, 대중이여 !

최후까지 우리의 슬로건을 지지하라.

그리고 궐기하라.

전사여 힘차게 싸워라."


학생 항일 운동

 



4백 용사! 우리들의 투쟁이 점점 전개되어 가나 투쟁은 단순히 광고보(光高普)니 혹은 전남에만 한한 일이 아니다. 조선·전세계에 연결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조선 수백만의 학생대중은 우리들의 승리를 기다리고 2천만의 부여민족은 우리들의 성공을 눈물을 머금고 갈망하고 있다.

자! 가자! 자유의 천지에! 용사야 힘이 있지? 용기를 내어 결정적으로 싸우자! 우리들의 싸움에는 승리가 있을 것이다. 이 승리는 실로 우리들 피압박민족의 해방되는 싸움의 길이요 소생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용감한 투사여! 우리는 우리의 앞에 진전을 방해하고 저지하는 여러 가지 부패물을 제거하고 천신만고를 참고 멀지 않은 우리의 목적지에 용감하게 돌진하자.

?) 우리는 우리의 전부가 계속할 수 있는 데까지 싸우자.

遁)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으로 견고한 철성(鐵城)을 포위하자.

?) 학교당국에 서약서를 제출한 자는 우리들을 먹는 역적이다.

?) 서약서를 제출한 자는 박멸매장(撲滅埋葬)하자.

?) 우리들의 싸움을 저해하는 5학년 ○○○을 박멸하자.

항의문

식민지 노예교육의 가장 노골적인 무치(無恥)한 폭압은 우리 학생대중으로 하여금 전국적 반항운동에까지 진출하지 아니할 수 없게 하였다. 연구비판의 자유박탈, 교육기관의 봉건적 전제, 경찰권에 의한 학생의 자주권의 유린, 교육의 민족적 차별, 이것 등이 반동적·식민지적 교육의 본질이며 그 추한 정체가 아니고 무엇이냐?

금회(今回) 광주고보교 학생동맹 휴학사건도 그 근원은 역시 이와 같은 무모한 노예교육의 본질에 기인한 것임을 우리들은 지적하는 바이다.

그런데 피등(彼等) 제국주의적 반동교육의 집행자이고 그 주구(走狗)인 학교당국은 포악하게도 자유를 획득하기 위하여 용감히 싸우고 있던 가장 진보적 분자를 방축(放逐)한 폭거에 나오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전 학생대중의 이름으로써 이와 같은 폭려(暴戾)한 탄압에 맹렬히 반대하는 동시 그 부당에 항의함.

1928년 7월 3일 광주고보맹휴본부

(<항일학생사> 광주고보맹휴격문)


항일독립전쟁

 



오인은 삼천만 한국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영·미·가(加)·호(濠)·화(和)·오(墺) 기타 제국의 대일선전이 일본을 격패(擊敗)케 하고 동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을 축하하여 자(玆)에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하노라.

1. 한국 전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전선에 참가하였으나 한 개의 전투단위로서 추축국(樞軸國)에 선전(宣戰)한다.

2. 1910년의 합방조약 및 일체 불평등조약의 무효를 거듭 선포하여 아울러 반침략국가의 한국에 있어서의 합리적 기득권익을 존중한다.

3. 한국·중국 및 서태평양으로부터 왜구를 완전히 구축하기 위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혈전한다.

4. 일본세력 하에 조성된 장춘(長春) 및 남경(南京)정권을 절대로 인정치 않는다.

5. 루즈벨트·처칠선언의 각 조를 견결(堅決)히 주장하면 한국독립을 현실키 위하여 이것을 적용하며 민주진영의 최후승리를 원축(願祝)한다.

대한민국 23년 12월 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독립운동사자료>Ⅱ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성명서)


사회적 민족운동의 전개

 



인류사회는 많은 불합리를 생산하는 동시에 그 해결을 우리에게 요구하여 마지않는다. 여성문제는 그 중의 하나이다. 세계는 이 요구에 응하여 분연(奮然)하게 활동하고 있다. 세계자매는 수천년래의 악몽으로부터 깨어서 우리의 생활도정(生活途程)에 횡재(橫在)하고 있는 모든 질곡을 분쇄하기 위하여 온 지 이미 오래이다.

이 역사적 세계적 혁명에서 낙오될 수 있으랴.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운동이 개시된 것은 또한 오래이다. 그러나 회고하여 보면 조선운동은 거의 분산되어 있었다. 그것에는 통일된 조직이 없었고 통일된 목표와 지도정신도 없었다. 고로 그 운동은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하였다.

우리는 운동상(運動上) 실천으로부터 배운 것이 있으니 우리가 실지로 우리 자체를 위하여 우리 사회를 위하여 분투하려면 우선 조선자매 전체의 역량을 공고히 단결하여 운동을 전반적으로 전개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일어나라! 오너라! 단결하자! 분투하자! 조선의 자매들아! 미래는 우리의 것이다.

(<한국근대민족해방운동사> 근우회 취지문)


강령

1. 우리는 조선민족의 정치적·경제적 해방의 실현을 기함.

2. 우리는 전 민족의 총역량을 집중하여 민족적 대표기관이 되기를 기함.

3. 우리는 일체 개량주의 운동을 배척하여 전 민족의 현실적 공동이익을 위하여 투쟁하기를 기함.

정책

1. 언론·집회·출판·결사의 자유

2. 조선민족을 억압하는 일체 법령의 철폐

3. 고문제폐지 및 재판의 절대공개

4. 일본이민 반대

5. 부당납세 반대

6. 산업정책의 조선인본위

7. 동척(東拓)폐지

8. 단결권·파업권·단체계약권의 확립

9. 경작권의 확립

10. 최고소작료의 공정(公定)

11. 소작인의 노예적 부역폐지

12. 소년 및 부인의 야업(夜業)노동 및 위험작업의 금지

13. 8시간 노동 실시

14. 최저임금·최저봉급제의 실시

15. 공장법·광업법·해원법(海員法)의 개정

16. 민간 교육기관에 대한 허가제 폐지

17. 일체 학교교육의 조선인본위

18. 일체 학교교육 용어 조선어사용

19. 학생의 연구자유 및 자치권의 확립

20. 여자의 법률상 및 사회상의 차별철폐

21. 여자교육 및 직업의 일체 제한의 철폐

22. 형평사원(衡平社員) 및 노복(奴僕)에 대한 일체 차별반대

23. 형무소에 있어서의 대우개선, 독서통신의 자유

(<재일조선인사회운동자료집> 신간회 동경지회 강령 및 정책)


경제적 저항운동의 전개

 



……자(玆)에 오인은 일대 근인이 유함을 간파하였으니 후(厚) 자급치 아니함이라 하노라. 환언하면 조선물산을 장려치 아니함이니 고로 오인이 이에 대서특필하고 절규고창(絶叫高唱)하는 바는 자작자급하자 함이니 즉 조선물산을 장려함이요, 또 환언하면 보호무역을 의미함이니 이것이 우리 조선인에게 가장 큰 문제라 하노라. 현금 구미 각국은 저와 같이 상공업이 발달되얏스나 자유무역주의를 행하는 국은 일(一)도 없고 다 보호무역주의를 행하나니 유차관지(由此觀之)컨대 선진이요, 부강한 국도 여피(如彼)히 국산을 장려하고 무역을 보호하거든 우황(又況) 낙오(落伍)이요, 빈약한 조선이리오. 고로 오인은 조선물산[本貨]을 장려하지 아니치 못하리라 하노니 차를 행함에는 하(下)의 실익이 유함을 확신하노라.

1. 경제계의 진흥이니 대범(大凡) 조선은 연년히 거액의 수입초과가 되야 경제계가 정차로 위미(萎靡)하고 쇠퇴하는지라. 고로 본화를 장려하여야 수입초과의 해를 방지함으로써 경제의 진흥을 도(圖)함이요,

2. 사회의 발달이니 경제를 인류생활의 기본이요, 원체라. 경제의 융체(隆替)는 오인 생활상 만반사업(萬般事業)에 기 영향이 파급치 안는 것이 업나니 고로 본화를 장려하여 경제계의 융성을 기하는 동시에 사회발달을 도함이요,

3. 실업자 구제책이니 농공상을 물론하고 타화(他貨)의 세력으로 인하야 조선인 실업자의 다(多)함은 실로 천(千)으로 계(計)하야 백으로 산할 수 업는지라. 고로 본화를 장려하여야 실업자롤 취직케 함이 사회구제상 막대한 효과를 수(收)함이요,

4. 본화를 애중(愛重)히 넉임이니 이는 정신상에 관한 대문제라.……고로 본화를 장려하야 위선 본화애중념(本貨愛重念)을 발(發)케 하고 아울러 자중자애성(自重自愛性)을 함양케 함이요,

5. 근검풍(勤儉風) 감용성(敢勇性)을 화성(化成)케 함이니……고로 견(堅)하며 실하며 후하며 질박한 본화를 장려하야 차를 사용케 함으로써 근실(勤實)과 검소의 풍을 성(成)케 하는 동시에 감용(敢勇)하며 쾌할한 성(性)으로 화(化)케 함을 도함이다.

차를 여행(勵行)하야 실효를 거(擧)코자 함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공덕심과 공익심이라 함이니 대개 우리가 법령이나 정책으로는 여차(如此)한 문제를 해결할 권리 또는 처지가 아닌 즉 자위상 불가불 공덕심과 공익심에 의하지 아니치 못할지라.……

(<한국현대명논설집> 조선물산장려회 취지문)


국외 이주 동포의 시련

 





……개천 4256년 9월 1일부터 동 15일경까지 2주일간 장시일 계속하여 왜지 관동에서 왜족이 한인을 학살한 그 참상을 무엇이라고 평할 것인가. 우리 인류사회에 있어서는 공전절후(空前絶後)의 참변일 뿐더러 폭랑(暴狼)·독사와 같은 동물계에서도 희유의 만행으로써 우리 동포 수만을 도살한 그 잔인비참한 정형(情形)에는 요귀악마도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동 1일 왜정부는 동경시 선교(船橋) 무선전신을 경유 관동부(關東府) 육현(六顯) 전반에 대하여 한인박멸을 명령하였다. 그 이유는 한인은 당시 당지의 진화(震禍)를 기회로 각처에 방화 또는 폭탄으로써 제반의 건축물을 파괴하고 혹 음료수에 독약을 투입하여 인명을 살해하고 혹은 권총·장총·폭탄을 휴대 혹은 대(隊)를 지어 일본인을 습격하는 등 관동지방의 전멸을 도모한다라고 하여 동경 횡빈(橫濱)을 시발점으로 하여 병대와 경찰관을 2부6현에 일제히 나포(羅佈)하여 한인박멸을 종횡으로 선전하니 왜족은 장약(壯弱)을 가리지 않고 손에 닿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장총·단총·장검·단검·철창·죽창·곤봉·추자·소화구·건어(鍵魚)찍기 등 형색의 흉기를 휴대하고 "조선인을 박멸하자"고 외치며 그 함성 천지를 진동하고 벌떼와 같이 일어나니 이가 소위 청년단 혹은 자경단이라 칭하는 것이다.

집의 내외, 촌락·시가는 물론 산·야·천(川)·초원까지도 빈틈없이 수색하여 한인이라고만 하면 남녀노유를 가리지 않고 만나는 대로 보는 대로 불문곡직 살육하니 선혈과 양심뿐인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면할 것인가? 우전(羽田) 부근에서는 기병대에 의해 2천명이 죽었고, 우전천(隅田川)변에서 4백명이 총살을 당했고, 신라천(神奈川) 부근에서 3백여 인, 기옥현(埼玉顯) 취상역(吹上驛) 부근 및 동경시 본소(本所) 부근의 4백여 명, 동경시 구호(龜戶)경찰서 구내에서 2백여 명, 중선도(中仙道) 본압정(本壓町) 부근에서 1백여 명이 죽었고, 동경시 상야(上野)경찰서 구내에서 150인, 학견(鶴見)경찰서 부근에서 1백여 명을 살육하니 우리 동포 2만 다수의 선혈은 보람없이 왜지 관동 전반을 피로 물들였고 우리 동포 2만 다수의 육체는 하릴없이 왜지 관동 전반의 비료로 화하였다.

하동(河東) 광장에 한인을 다수 포집(捕集)하여 기천기백인을 한꺼번에 난사하고 병영 또는 경찰서 구내에 기백기십인을 집합시켜 살해하였다. 더구나 노상에서 보는 대로 병력 내지 경찰관이 총살·자살(刺殺)한 것은 물론 보통의 살인수단이라고 할 수 없게 소위 자경단·청년단 등은 '조선인'이라고 외쳐 부르는 한 마디에 백이 응하여 낭(狼)의 군(群)과 같이 동서남북에서 모여와 1명의 우리 동포에 대하여 수십인의 왜노가 달라붙어 검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봉으로 때리고 발로 차서 쓰러뜨리고 그 위에 죽은 사람의 목을 묶어 끌고다니면서 찌르고 차면서 시체에까지도 능욕을 가하였다.……

당시 조선내의 각 언론계 출판물은 물론 왜지의 각 신문·잡지의 한인학살에 대한 보도를 일체 금지하고 오히려 한인의 이재자(罹災者)를 구제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는 선전적 기재를 장려하고 각처에 한인수용소를 설치하여 실지로는 감금하면서 외계에 대하여는 "조선인 보호이다"라고 선전함과 동시에 한인이 귀국하여 이 참변의 실황을 설포(說布)할 것을 겁내어 정부의 비밀통첩으로써 각 경찰서에서 한인의 귀국을 금지시키고 외계에 대하여는 도중의 위태로움을 염려하는 때문이라 하였다. 그 후에 이르러 귀국을 허가하였으나 이들 귀국인의 신변은 순사가 비상한 사찰을 가(加)해 지인(知人)에게 자기가 겪은 경력담을 하면 즉시 '유언비어'라고 엄벌을 가하는 등 요악(妖惡)한 정책과 가혹한 압박으로써 조선 또는 외지에 한인학살의 정황이 전포되는 것을 방지하고 간사한 수법으로써 한인 보호의 형식으로 꾸며 세계를 기만하려 했다.……

(<한국독립운동사> 3 동경진재 한인학살보고서)


국학운동의 전개

 



조선어학회사건 선고문

위의 것에 대한 치안유지법 위반 피의사건에 관하여 예심을 수행하여 종결·결정한 것이 아래와 같음.

주문

피고인 이극로·최현배·이희승·정인승·이중화·이우식·김양수·장현식·김도연·이인·김법린 및 정태진에 대한 본건을 함흥지방법원의 공판에 부침.

이유

민족운동의 한 가지 형태로서의 소위 어문운동(語文運動)은 민족고유의 어문의 정리·통일·보급을 도모하는 하나의 문화적 민족운동인 동시에 가장 심모원려(深謀遠慮)를 포함한 민족독립 운동의 점진형태(漸進形態)이다.

생각건대, 언어는 사람의 지적·정신적인 것의 원천일 뿐 아니라, 사람의 의사·감정을 표현하는 이외에 그 특성도 표현하는 것이므로, 민족고유의 언어는 민족 안에 있어서 의사의 소통은 물론 민족감정 및 민족의식을 빚어내어 이에 굳건한 민족의 결합을 성취시키며, 그것을 기록하는 민족고유의 글자가 있어서 이에 민족문화를 성립시키는 것이니, 민족적 특질은 그 어문을 통하여, 나아가서는 민족문화의 특수성을 파행시키고 향상 발전시키며, 그 고유문화에 대한 과시와 애착은 민족적 우월감을 생기게 하고, 그 단결을 일층 공고하게 하여 그 민족은 활발히 발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민족 고유의 어문의 소장(消長)은 그것이 곧 민족 자체의 소장에 관한 것이 되므로, 약소민족은 필사의 노력으로써 그것을 유지·보전하기에 힘쓰며, 아울러 그 발전을 꾀하여 방언의 표준어화, 문자의 통일과 보급을 희구하여 마지않는다.

그리하여 어문운동은 민족 고유문화의 쇠퇴를 방지할 뿐 아니라, 그 향상발전을 가져오게 하고, 문화의 향상은 민족 자체에 대하여 일층 굳센 반성적 의식을 불러일으키고, 강렬한 민족의식을 배양하여 약소민족에게 독립의 의욕을 용솟음치게 하며, 정치적 독립달성의 실력을 양성시키는 일이 되나니, 이러한 운동은 18세기 중엽이래 구라파 약소민족들이 반복하여 채용하여 큰 성과를 거둔 데에 비추어볼 때, 세계 민족운동사상에 가장 유력하고 또 효과적인 운동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본건 조선어학회는 대정 8년 만세소요사건의 실패에 비추어 조선의 독립을 장래에 기약하는 데는 문화운동에 의하여 민족정신의 활기와 실력양성을 급무로 삼아서 대두된 소위 실력양성 운동이 그 출발의 꽃봉오리였음에 불구하고, 드디어 용두사미로 마쳐서, 그 본령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였더니, 그 뒤를 받들어 소화 6년(1932) 이래로 피고인 이극로를 중심으로 하여 문화운동중 그 기초적 운동이 되는 위에서 말한바, 어문운동의 방법을 취하여 그 이념으로써 지도이념을 삼아가지고, 겉으로는 문화운동의 가면을 쓰고 조선독립을 목적한 실력배양 단체로서 본건이 검거되기까지 10여 년이나 오랫동안 조선민족에 대하여 조선의 어문운동을 전개하여 온 것이다.

(<한글학회 50년사>)


교육운동

 



오인의 운명을 여하(如何)히 개척할까. 정치나 외교냐 산업이냐. 물론 차등사(此等事)가 모두 다 필요하도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고 요건이 되면 가장 급무가 되고 가장 선결의 필요가 있으며 가장 힘있고 가장 필요한 수단은 교육이 아니기 불능하도다. 하고(何故)오하면 알고야 동(動)할 것이요, 알고야 일할 것이며 안 이후에야 정치나 외교도 가히 써 발달케 할 것이다. 아지 못하고 어찌 사업의 작위와 성공을 기대하리오.

경언(更言)하면 정치나 외교도 교육을 대(待)하여서 비로소 그 작흥(作興)을 기할 것이니 교육은 오인의 진로를 개척함에 재하여 유일한 방편이요, 수단임이 명료하도다.

그런데 교육에도 계단과 종류가 유하여 민중의 보편적인 지식은 차(此)를 보통교육으로써 능히 수여할 수 있으나 그러나 심원한 지식과 온오한 학리는 차를 고등교육에 기(期)치 아니하면 불가할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거니와 사회최고의 비판을 구하며 유능유위(有能有爲)의 인물을 양성하려면 최고학부의 존재가 가장 필요하도다.

그뿐만 아니라, 대학은 인류의 진화에 실로 막대한 관계가 유하나니 문화의 발달과 생활의 향상은 대학을 대(待)하여 비로소 기도할 수 있고, 획득할 수 있도다. 시관(試觀)하라. 저 구미의 문화와 구미인의 생활도 그 발달과 향상의 원동력은 전혀 대학에 계재하나니 희(噫)라 저들의 운명은 실로 12, 13세기경에 파리대학을 위시하여 이(伊)·영(英)·독(獨) 제국에 발연히 성립된 각처의 대학설립으로부터 빛나고 개초(開招)되었다. 할 수 있도다. 환언하면 문예부흥도 대학발흥되고 종교개혁도 대학에서 생기고 영·불의 정치개명도 대학에서 양출하였고 산업혁명도 대학에서 최촉(催促)하였으며 교통도 법률도 의약도 상공업도 모두 다 대학에서 주(鑄)한 것이로다.

그러므로 금에 오인 조선인도 세계의 일우(一隅)에서 문화민족의 일원으로 타인과 견(肩)을 병(幷)하여 오인의 생존을 유지하며 문화의 창조와 향상을 기도하려면 대학의 설립을 사(捨)하고는 경(更)히 타도(他道)가 무(無)하도다.

그런데 만근(挽近) 수삼년 이래로 각지에 향학열이 울연(鬱然)히 발흥되어 학교의 설립과 교육의 시설이 파(頗)히 가관할 것이 다(多)함은 이 실로 오인의 고귀한 자각으로서 출래한 것이다. 일체로 서로 경하(慶賀)할 일이나 그러나 유감되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도 대학이 무(無)한 일이라. 물론 관립대학도 불원(不遠)에 개교될 터인즉 대학이 전무한 것은 아니나 그러나 반도문운(半島文運)의 장래는 결코 일개의 대학으로 만족할 바 아니요, 또한 그처럼 중대한 사업을 우리 민중이 직접 영위하는 것은 차라리 우리의 의무라 할 수 있도다. 그러므로 오제(吾?)는 자(玆)에 감한바 유(有)여 감히 만천하 동포에게 향하여 민립대학의 설립을 제창하노니 자매형제로 내찬(來贊)하여 진(進)하여 성(成)하라.

민립대학 기성회(期成會)

(<남강이승훈전기> 민립대학 발기취지서)


어린이날 선전문

 





?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마시오.

?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이 대접하시오.

?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 주십시오.

?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 가며 기르십시오.

?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해 보십시오.

? 어린이에게 잡지를 자주 읽히십시오.




종교활동

 



존경하는 천도교인과 민중 여러분! 우리 대한은 당당한 자주독립국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세계의 으뜸 국민임을 재차 선언합니다. 지난 기미년의 독립만세 운동은 곧 우리의 전통적인 독립의 의지를 만방에 천명한 것이고 국제정세의 순리에 병진하는 자유·정의·진리의 함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무력적인 압박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한 이 자주독립 운동은 몹시 가슴아프게도 꺾이었습니다. 우리의 지난 민족종교계 대표들은 자진해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갔습니다. 그것은 당당한 우리의 평화적인 행동으로 독립의 절규를 상징하는 일대 시위 운동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대표를 갖은 곤욕과 무질서한 문초로 위협하였습니다만 우리는 결코 비굴하거나 투항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반도 삼천리가 모두 감옥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의 독립을 위한 투쟁은 이제부터가 더욱 의미가 있고 중요합니다. 뜻맞는 동지끼리 다시 모여 기미년의 감격을 재현하기 위해 천도교의 보성사(普成社) 사원 일동은 재차 봉기하여 끝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을 결의하고 선언하는 바입니다.

아! 우리 민중들은 차마 망해가는 성스러운 나라를 그냥 방치해 두렵니까. 좌절해서는 아니됩니다. 진실로 우리나라 우리 집을 위해 한두 사람의 지사가 없단 말입니까. 비참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운이 다해서 그렇습니까. 명이 다해서 그렇습니까.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 압박과 질곡 속에 얽매어 있다 해도 우리는 틀림없이 광복(光復)하고 말 것이니 민중이여 안심하고 경건하게 이번의 독립시위운동에 참가하십시오. 우리의 역사는 반만년의 빛나는 전통과 유서가 있는 것이고 근대적 충의(忠義)와 도덕의 근원이 깊은 것을 뿐 아니라 종교와 문학이 융창하고 밝아서 그 패택(沛澤)이 일본을 살찌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보다 우위에 있음을 긍지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국혼이 건재하고 견고하면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제 문득 국제정세를 살펴보건대 시급히 도모하여 독립시위 운동을 하지 않으면 자존영생(自存永生)할 수 없으며 예의항거(銳意抗拒)하여 일본을 늘 족축(族逐)하지 못하면 결코 발전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것은 사는 게 아닙니다.

일본도 기미년 이후 무단적인 헌병경찰통치를 고쳐 유화정책을 쓰고 있으나 이는 고등경찰통치이므로 기만당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의 절대적인 주장은 오로지 독립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민족의 진로에는 오직 자주독립이 있을 뿐입니다. 사회주의 풍조를 불식하고 오직 민중국가 건설에 매진하고 일본의 감언이설에 기만당하는 간사한 어리석음을 깨끗이 씻어내야 할 것입니다.

민중 각자는 짚자리에서 잠자고 창을 베개로 하며 또 끓는 물 속이나 불 속의 형세라도 흔쾌히 뛰어들어 온누리가 자주독립되게 하여 일월(日月)이 다시 밝아지면 어찌 한 나라에 대한 공로만으로 그치겠습니까. 진실로 후세에 이 말을 전하여 훌륭한 조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 비록 미국 워싱턴의 태평양회의에 거는 독립에의 원대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해도 우리의 독립의지에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날에는 영광과 행복이 있을 뿐입니다. 어서 이 독립운동 대열에 참여해 주시길 간절히 비는 바입니다.

단기 4255년 3월 1일

천도교 보성사사장 이종일 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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