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開國始祖 '檀君'

“무력 아닌 평화로 세상을 구하라”

이덕일 역사평론가

군을 현대사로 만든 최초의 인물들은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단군을 13세기 인물 일연이 몽고의 침략에 시달리는 고려의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창작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통해 단군은 수천 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현대사의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단군의 성격에 대한 해석은 일단 논외로 치더라도 단군이 고려 후기의 창작품이라는 일인들의 논리는 고려 이전에도 단군이 존재했다는 많은 증거들에 의해 반박할 수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사례만 들어 보자. ‘구당서’ 고구려조의 ‘(고구려는) 영성신(靈星神)·일신(日神)·가한신(可汗神)·기자신(箕子神)을 섬긴다’는 기록 중 ‘가한신’이 바로 단군을 뜻하는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 동천왕조에는 ‘평양성을 쌓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옮겼는데 평양은 원래 선인왕검(仙人王儉)의 택(宅)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선인왕검’은 물론 단군왕검을 뜻한다. 고려시대에는 선인이 단군의 이칭(異稱)이었던 것이다.

고구려 때도 단군 존재 알려져

이처럼 고려시대 훨씬 이전인 고구려시대에 이미 단군의 존재가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은 단군을 일연의 창작품이라고 주장하는 일인 학자들의 논리를 정치적 왜곡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일인 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한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나선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단군을 국조(國祖)로 떠받들고 그 부활을 주장하는 현실을 주목했던 것이다. 백암 박은식을 비롯해 단재 신채호도 그랬고, 오늘날까지 한창 논란이 되는 ‘환단고기’(桓檀古記)의 편자 계연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일인 학자들은 단군이 우리 민족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동인으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군을 일연의 창작물이라고 폄하했던 것이다.

즉, 단군이 독립운동의 한 계기가 된다고 보고 폄하한 것이니 일제시대 단군은 치열한 현대사였던 것이다.

단군이 일연의 창작품이라는 일본 학자들의 주장은 이미 허구임이 드러났지만 이는 역으로 단군이 그만큼 현대적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단군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단군의 실체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단군을 현대, 그것도 21세기에 다시 해석할 때 핵심적으로 강조해야 할 이미지는 평화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개국시조는 단군처럼 그 뿌리를 하늘에 두고 있는데, 나라를 건국하는 방법은 대부분 무력을 통한 것이다.

무력으로 하늘이 내려준 지도자를 거부하는 악의 세력을 징벌하고 건국하는 것이 대부분의 개국시조들이다. ‘일본서기’의 개국시조인 신무(神武)천황은 천조대신(天照大神)에게 칼을 받는다.

물론 그 외에 거울과 방울도 받지만 나라를 건국하는 핵심 이미지는 신무천황의 동정(東征) 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전쟁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고구려 시조 주몽은 비류국의 송양을 활로 제압하는 전쟁을 통해 나라를 세운다. 그러나 단군은 다르다. ‘삼국유사’에서 인용한 ‘고기’의 첫 기록을 보자.

‘고기에서 말하기를 옛날 환국(제석<帝釋>의 나라를 말한다)이 있었는데, 서자 환웅이 여러 번 세상을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기를 바랐다’(古記云 昔有桓因<謂帝釋也> 庶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삼국유사’ 권1, 고조선).

여기서 환웅과 단군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환인과 환웅은 단군이라는 결과물을 낳기 위한 과정으로 단군에게 체화된 상징들이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세상에 가진 뜻은 인간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구하는’ 것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다른 개국시조들도 자신을 하늘과 연결시킬 때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는 것을 명분으로 삼지만 막상 그 실현 방법은 무력을 통한 정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웅은 달랐다.

그는 3,000여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하는데, 이때 그가 거느리고 내려오는 관리들은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였다.

다른 개국시조들은 무력 정벌

풍백의 백(伯)에 대해서는 ‘예기’(禮記) 곡례(曲禮)편에 ‘오관(五官)의 우두머리를 백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고, 우사·운사의 사(師)에 대해서는 ‘서경’(書經) 익직(益稷)편에 ‘주에는 12사를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풍백은 수상(首相)을 뜻하고 우사·운사는 그 지휘를 받는 지방관의 명칭이자 중국측 고대 기록에 나오는 농사(農師)·공사(工師)·어사(漁師)·노사(弩師) 등처럼 구체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를 뜻한다. 바람과 비와 구름을 주관하는 풍백·우사·운사는 그 이름이 뜻하는 대로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벼슬아치들이다.

환웅은 세상을 구하려는 뜻만 평화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실현하는 방법도 군사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3,000여 명의 무리를 거느린 환웅이 건설한 신시는 여타의 개국시조들처럼 무력에 의한 정벌을 통해서가 아니라 보다 우수한 영농기술과 이를 실현할 선진 조직을 통한 자발적 복속(服屬)에 의해서였다.

역사상의 모든 개국이 무력 충돌에 의한 정복이거나 압도적 무력에 눌린 복속인데 비해 환웅의 경우는 피정복민의 자발적 복속에 의한 개국이었다. 이는 피정복민의 자리에서 복속이라기보다 자발적 수용(受容)에 가까운 것이었다.

환인과 환웅이 뜻을 실현하는 과정도 평화적이었다. ‘고기’는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 태백산을 내려다보니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는 것이 마땅한지라’(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可以弘益人間)라고 기록하고 있다. 환웅은 부왕에게 죄를 짓고 쫓겨나거나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했다 끝내 비극적 운명을 맞아야 했던 오이디푸스처럼 환인과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부조하는 관계다.

환인과 환웅 부자의 이런 관계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가족 해체 시대에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이는 비단 한 가족 내의 화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인으로 상징화된 천상세계와 환웅으로 상징화된 지상세계 사이의 화목과 조화를 의미한다.

환인 환웅 부자는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이타적(利他的)이고 공익적 목적에 뜻을 같이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개인적, 집단적 이기주의의 결과 개인과 가정과 사회가 모두 붕괴 위험에 처한 현대사회에서 환인 환웅 부자의 이타적, 공익적 자세는 본받을 만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환웅은 이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환웅은 풍백·우사·운사와 함께 곡식(主穀)과 생명(主命)과 병(主病)과 형벌(主刑)과 선악(主善惡)을 주관하는 관리들을 데리고 내려온다.

이들이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凡主人間三百六十餘事)하는데, 농경을 주관하는 풍백·우사·운사와 인간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는 주곡·주생·주병·주형·주선악 등은 고대사회는 물론 현대사회에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조직이었다.

공익적 이념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선진 조직을 가진 환웅의 건국은 실패할 수 없었다. 이는 ‘삼국사기’에 풍백과 우사 등이 신격화된 기록에서도 알 수 있다.

풍백·우사·운사는 기술관료

[위] 1947년의 단군릉 [아래] 현재 모습.
‘삼국사기’ 잡지(雜志) 제사편에는 ‘입춘 후 축일(丑日)에 견수곡문(犬首谷門)에서 풍백에게 제사지내고, 입하(立夏) 후 신일(申日)에 탁저(卓渚)에서 우사에게 제사지낸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절기는 28수(宿) 중 각각 기성(箕星)과 필성(畢星)이라는 별자리를 나타내지만 입춘 후 축일과 입하 후 신일은 그 해 영농의 풍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날이라는 점에서 풍농을 비는 제의인 것이다.

환웅이 거느린 풍백·우사가 삼국시대에 신격화되었다는 사실은 선진적 영농기술을 통한 환웅의 건국이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공익적 이념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선진 조직을 통한 평화적 건국은 현대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비인간적 자본의 논리에 의한 신자유주의 세계질서와 팔레스타인 사태에서 보이듯 폭력을 통한 정복과 역시 폭력을 통한 저항으로 영일이 없는 인류에게 환웅의 이런 평화적 건국과 그 성공은 소중한 가치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환웅은 건국 후에도 정복자로 남지 않았다. ‘고기’에 따르면 환웅이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던 때(在世理化)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동굴 안에 살면서 항상 신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時有一熊一虎 同穴而居 常祈于神雄 願化爲人). 그러자 환웅은 조건을 제시한다.

영험 있는 쑥 1심지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의 모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건부 수락이었다. 이는 어떤 요구에 대해 일정한 수련 과정을 제시한 것이다. 어떤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무조건적 요구가 횡행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한 시사가 될 수 있다.

그 수련을 견디지 못한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지만 삼칠일(三七日), 곧 21일 동안 삼갔던 곰은 바라던 대로 사람의 몸을 얻었다. 당초 요구한 100일은 기계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날짜가 아니었다. 그 100일의 5분의 1에 불과한 삼칠일을 삼가고 곰은 원하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삼칠일이라는 날짜가 단순히 21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초 환웅의 속뜻은 100일이 아니라 삼칠일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21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삼칠일이라고 표현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삼칠은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이다.

아기 탄생의 표시인 문 앞의 금줄은 삼칠일 동안 단다. 우리 민속에서 삼칠일은 산모의 건강이 거의 회복되는 기간이자 아기의 젓살이 오르는 시점이다. 새 생명이 위기를 넘기고 비로소 기지개를 켜는 시점인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된 웅녀는 ‘혼인할 짝이 없어 늘 신단수 밑에서 아기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熊女者無與爲婚 故每於壇樹下 呪願有孕)하는데 이 기도에 감응하는 존재가 바로 환웅 자신이다. ‘이에 환웅은 가화해서 웅녀와 혼인’(雄乃假化而婚之)하는데 바로 ‘가화’(假化)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가화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거짓으로 변해서’라는 뜻인데, 이는 환웅이 거짓으로 인간으로 변해서 웅녀와 결혼했음을 뜻한다.

단군은 21세기 민족의 이상

이는 웅녀뿐만 아니라 환웅 자신도 중요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의미한다. 웅녀는 쑥과 마늘만으로 삼칠일을 삼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인간이 되었다.

환웅이 하강한 목적이나 웅녀가 인간이 된 목적은 모두 단군이라는 중요한 결과물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신시(神市)는 궁극적으로 인간이 다스려야 하는 나라였다. 환웅이 다스리는 신정(神政)은 일시적인 체제일 수밖에 없다.

인간 자신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실현하는 나라가 되어야 했다. 인간 스스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나라를 만들 때 ‘여러 번 세상에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기를 바랐다’는 환웅의 환국(桓國), 즉 천상에서의 꿈은 지상에서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위해 환웅 자신이 인간으로 변하는 ‘가화’를 해야 했다. 가화의 결과 신인(神人)으로 변한 환웅은 인간 웅녀와 결혼할 수 있었고 단군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타인에게만 변할 것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 환웅이 가화하고 곰이 삼칠일 동안 삼간 사실은 중요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경영자는 노동자에게, 노동자는 경영자에게, 정치가는 국민에게, 국민은 정치가에게 ‘네 탓’만 하지 ‘내 잘못’을 고칠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것이 현실사회다.

심지어 스스로 고백한 ‘내 잘못’이 공격의 대상이 될 정도로 세상은 금수 세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웅녀에게 일정 정도 시련을 준 환웅이 스스로 가화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갈등해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웅녀는 물론 환웅도 스스로 변한 결과 단군이라는 이상사회의 구현자이자 이상사회 그 자체이기도 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현대인들도 평화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웅녀처럼 삼가야 하고 환웅처럼 가화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단군은 21세기 우리 민족의 이상으로 살아 숨쉬는 것이다.
 
출판호수 2003년 10월호 | 입력날짜 200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