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문 時論)

 

   국사를 해체해야 하나?

  (한국민족주의 더 뜨거워져야!)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 어느날 서울에서 내노라하는 지성들이 모여 '국사의 해체를 향하여'란 주제로 냉철한 이성의 목소리를 냈다.절대주의 독재권력을 향한 인간성 회복의 목소리로 경하하며 받아들여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민족이란 개념은 오래되고 진부한 느낌마저 준다.

그러나 근대 민족주의 탄생에서부터 개화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산물인 민족은 중세 봉건사회의 해체에 대치하는 새로운 이슈였다.그것은 절대주의체제의 탄생과 강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음은 물론이다.

서양의 중세사회에서 유럽제국은 독립국가가 아니라 로마바티칸으로부터 권위를 인준받는 지방의 대소제후에 불과하였다.여기에서 단일주권국가라는 개념은 발붙일 틈이 없었다.존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대리자인 교황일 뿐이다.지방적 봉건제후는 신의 대리자인 교황의 질서하에 엄격히 통제되어 존재한다.

일국의 국왕이 교황의 뜻을 거슬렀다가 파문을 당하고 드디어는 눈덮인 평원에서 무릅꿇고 사죄하는 대목에서 바티칸의 위력은 천하를 덮는다.(그레고리 7세)

그러나 오캄의 유명론과 14세기 르네상스 사조에서 정신적 기연을 찾은 문명의 조류는 중세적 신의 질서에 반기를 든다.이시기는 상당기간동안 계속되며 진통을 거듭한다.

엄격한 신의 세계에 갇혀있던 인간이 존재(자연과학)와 이성(신학에서 철학으로)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암흑에서 문명으로 넘어오는 숨막히는 순간이다.

이 위대한 여명의 시기에 신의 질서에 대치하는 민족이란 개념 또한 제소리를 내려고 시도한다.단체주의자들은 이를 재빠르게 국가주의와 결합시킨다.

신의 질서하에 숨죽이던 국가가 이제는 자주적 목소리를 내는 동력으로 민족주의라는 바람을 탄 셈이다.따라서 민족주의는 국가주의 일수 밖에 없었다.민족주의가 다른 용어를 마다하고 지금도 여전히NATIONALISM 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구의 민족주의가 이처럼 로마 바티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던 만큼 신교적 자유를 담고 있었던데 반하여 아시아-아프리카 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자존을 지켜내기위한 생존투쟁 내지 방어적 의미가 더욱 강했다.따라서 서구의 민족주의가 국가주의화하고 곧바로 절대주의 또는 제국주의에 동력을 제공하였지만, 아시아-아프리카 제국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생존을 위한 인종적 심정적 요소를 짙게 담고 있다.

한때 풍미하던 범슬라브주의,게르만(아리안)주의가 역사의 서리를 맞고 퇴색한 반면,아시아-아프리카,중동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그 기저에
심정적 요소를 폭넓게 깔아놓은채 내연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아직도 이들의 생존 내지 자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거나 더욱 큰 상처를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세상에 순수성을 유지한 종족이 존재할 수 없듯이 종족주의에만 집착하는 생물학적 민족개념은 무의미하기 까지 하다.순수단일 민족임을 자랑하는 우리한민족 조차 생물학적 혈통을 캐보면 잡다한 혈통이 뒤섞인 것을 것을 알게된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정의되는 민족이란 무엇인가?

분명 비스마르크,히틀러,낫세르 식의 생물학적 종족개념은 아닌 것이다.

현재 민족개념은 새로운 공동체 개념으로 발전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해석되어야 마땅하다.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배어든 공동체 의식이 민족개념을 형성한다고 하겠다.공동체 의식이 민족개념을 형성한다고
간단히 말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기저삼아 형성되는지는 각 민족사회마다 다른 특색을 나타낸다. 순수한 혈통, 종교, 신념, 역사적 체험,문화 등등 다양한 요소가 민족개념을 밑바침 하고 있음을 알게된다.그러나 이 모든 요소는 다양해 보이면서도 근원적으로 통일되어 있다.과거의 체험(역사)을 함께하고,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꿈과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이라고 할 것이다.생물학적으로 동일 인종이라고 할지라도 오랜 역사에서 체험을 공유하지 못하고,꿈과 가치를 함께하지 못하면 단일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에게서 통일이 화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북한과 남한은 지나간 체험(역사)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나,서로 다른 체제하에
오랜 분단으로 이질화가 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그나마 국사가 민족의 이질화를 어느정도 지연시키고 있다고나 할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민족개념의 문화적 변전을 일부에서는 발전으로 이해하려 하지만,서구의 학자들은 이를 해체과정으로 주장한다.

국사(National History)가 우리에게 억압이며 배제이며 은폐라고 보는 견해가 바로 후자의 입장이다.그들은 국사 또는 민족개념이 개인의 다양한 창의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민족은 이제 그 소명을 다한 나머지 소멸 내지 해체 되어야 하고 그 과정에 돌입하였다고 본다.더구나 새로운 디지털 문명에서는 국사라든지 민족이라는 억압구도가 거추장스런 존재로 남았으며,본격적인 청산작업이 이시대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위와같은 주장은 일응 서구민족주의에 관한 폐해를 지적하는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전형적인 학문 사대주의라고 필자는 지적하고 싶다.학문적 사대주의에 빠져있는 일부 학자들이 서구어 논문을 자구해석하여 이를 우리현실에까지 그대로 평면적용하려 애쓴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들이 상정하는 서구사회와 토양부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구의 민족주의는 손쉽게 국가주의,절대주의,제국주의와 결합하여 공격적으로 표현되었음에 반하여,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는 외세의 침탈에 대응하여 민족의 자존 내지 생존을 지키기 위한 운동으로 시작하여 성장하였기 때문에 방어적 성격이 강하다.제국주의 적 침략지배에 저항하여 민족의 자존과 독립을 쟁취하는 수단으로 발전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는 따라서 그 소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서구의 절대주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와는 다르게 억압이라거나 배제 또는 은폐일 가능성이 근원적으로 희박하다.

서구의 일부 학자들이 민족주의 사상의 폐해를 강조하고 각국사를 해체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사회나 역사에서 나온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일 뿐이며,더 나아가서는 어떤 의도를 담은 음모일 가능성조차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서구의 민족주의가 국가주의, 절대주의 또는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개인과 국제사회에 막심한 폐해와 파행을 초래한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때문에 아시아 아프리카 제국의 민족주의 또는 그에 터잡은 국사를 해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제 막 독립을 쟁취했거나 독립을 눈앞에 둔 아시아 아프리카 제국에게 무장해제 내지 생존을 포기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말하자면 서구 우월주의의 또다른 표현이다.

근원적 차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지나간 시대의 우월주의에서 빚어진민족이론이나 국사해체론을 마치 개인해방의 메시지처럼 들고나오는학자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민족주의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강자는 지나간 시대의 피해자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민족주의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침탈로부터 생존을 쟁취하는 피의 투쟁으로 생성되어 아직도 그 몫을 다하지 못했다.어느 면에서 이들 민족의 상처는 더욱 크고 깊어서 그 치유와 회복에 민족주의의 체온이 절실하기 조차 하다.이제 막 싹을 틔우는 아시아 아프리카를 향하여 민족주의와 국사가 개인과 국제사회에 억압이며 은폐이며 배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모든 비난은 서구의 민족주의나 자국사의 오만함에 주어야 할 몫이다.

일찌기 맑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에서 민족이나 국가간의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전환하라고 요구하였다.민족이나 국가는 종국에 자연소멸할 수 밖에 없는 허상이며, 따라서 허상을 위해 소비하는 에너지가 모순의 실체인 계급간의 투쟁으로 전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민족 또는 국가의 존재를 전략적으로 인정하는 레닌에 이르러 민족의 개념이 강조되고 있음을 보게된다.

결국 민족은 국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현실태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다만 그 형태나 개념은 일률적이지 못하고 다양한 요소를 담은 살아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이시대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의 경우에서 그들은 많은 시사를 얻는다.미국이야말로 전세계 온갖 종족의 잡다한 혼입으로 이루어진 다종족 국가이다.과연 그들에게 민족이란 개념 내지 민족주의가 존재하는가?의문을 제기한다.많은 사람들은 말한다.미국에 시민(Citizen)은 존재하되 민족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시민들에게 Nation 이나 Nationalism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아무도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한국어와 영어의 차이일지 몰라도 그들은 Nationalism을 국민주의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더불어 그들의 애국심(Patriotism)
또한 유별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이와같은 상황에서 국사해체를
강조함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싶다. 차라리 국사의 서술방법이나 내용에 대한 비판,의견제시가 마땅할 것이다.더구나 한국사는 물론 한국의 민족주의 역시 다른 아시아 아프리카의 민족주의와 같이 외세의 제국주의 침탈로부터 자존을 지키려는 방어적 민족주의 임을 상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

과거의 생물학적 종족주의가 신문명 질서에 적응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따라서 우리는 흥선대원군이나 전봉준식의 쇄국적 쇼비니즘에 착근한 감성적-배타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개국의 정신에 합치한 진정한 민족주의로 바로 읽지 않으면 안된다.종족주의에 기반한 민족개념은 철저한 자기  쇄신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다.그렇다고하여 미국식의 Nationalism이 곧 우리의 민족주의라고 치부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아시아-아프리카의 민족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차원을 넘어선 역사적 산물임을 직시하여햐 한다.국가주의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심정적 요소를 더 많이 담고 있다.국가주의의 해체 내지 소멸이 이시대의 이슈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민족주의는 중요하고 또 이루어야 할 목표가 분명하다.

발전사적인 입장에서 모든 사유개념이 그러하듯이 사물을 특징짓는 언어 또한 동태적으로 특징지어지지 않으면 안된다.초기의 민족주의와 이를 이용한 정치가들의 의도가 어찌하였던 민족주의는 종족주의에서 점차 그 외연을 확대하여 새로운 문명에 대응하고 있다 할 것이다.

국사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족주의의 현주소를 오독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정도로 민족주의를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편승할려는 정치꾼들 또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그들의 공통된 오류는 현재의 한국민족주의의 위치에 대한 오해와 더불어 그 과제를 잘못 읽고 있는 점이다. 상황의 변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9세기말의 의병운동이나 국산품애용식의 투쟁이 이시대의 유일한 민족전략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촛불시위 현장을 기웃거리는 정치꾼이나,국사 그리고 민족주의가 억압이며 은폐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나 치졸하기는 마찬가지다.

잘못된 판단에서 실수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과제 설정과 그 실천은 앞을 내다보는 민족전략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눈앞에 보이는 작은 사물에서 한풀이식의 민족운동이나 흥선대원군 류의 쇄국적 자폐증은 오히려 민족쇄락의 길을 고속질주하는 어리석음에 불과하다.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집단과 집단간의 혈투로, 이제는 국가와 국가,민족과 민족간의 생존을 건 싸움이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총성없이 진행되는 전쟁이라고하여 국사를 해체하자는 논리는 그래서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다만 우리의 민족이념이 인류사에 기여할만한 문명적 가치를 담고 있는지를 재검토하는 작업은 언제든지,또 얼마든지 필요하다.

가치있는 작업을 위해서는 집단적 노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가장 효율적이다.디지탈문명이 개인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한다고 치더라도 이를 실현하고 보장하는 일은 여전히 집단과 체제의 몫이다.우리나라의 국가나 민족의 목표가 요즘들어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목소리에 끌려가는 모습이어서 안타깝다.물론 여론을 존중하는 정치인의 자세를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그러나 서버가 자신의 몫을 포기하고 클라이언트의 눈치보기에 바쁘다면, 그리하여 국사해체를 주장할 정도로 무력증에 빠졌다면,촛불시위에 국가전략을 수정하는 것 이상으로 불행한 일이다. 민족주의를 수세기전의 종족주의로 잘못 이해하고 감성적으로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이 이시대의 정치를 이끌어간다면 이 또한 국사해체를 주장하는 일 만큼이나 민족의 재난으로 작용할 것이다.
(참고:衛正斥邪)

이시대에 나는 우리의 민족 그리고 국사에 관하여 얼마든지 더 말하고
자랑하여야 할때라고 생각한다.여기쯤에서 우리는 지도자의 자질로 마키아벨리의 혜안을 빌리고자 한다.

국사해체를 주장하는 분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헤아린다 하더라도 우리의 국사는 다른 오랑캐들의 침략사와 다른 위대한 정신을 담고 있기에 '해체'를 주장함은 또한 어불성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의 국사는 평화와 인간성회복의 기나긴 여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하고 있다.우리는 국사를 좀더 다듬고 가꾸어서 인류 문명사에 기여하는 계기를 찾아야 할 것이다.

국사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유태민족의 방황과 고난의 역사를 기록한 바이블을 경외하며 받아들이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역사는 지나간 시대와의 대화라고 하였다.그리하여 역사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쓰여지는 것이다.우리의 국사가 가르치는 위대한 정신을 외면하고 단지 그 독소적 남용에만 눈을 돌린 사람들의 성급한 판단에 필자는 연민조차 느낀다.

우리의 국사가 담고있는 정신은 무엇인가?

'신화'라는 폄하에 시달리는 단군의 개국사에서부터 진정 위대한 이념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한다.우리의 국사는 가르친다. 나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인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태인은 여호와 신을 위한 종속된 삶을 바이블에 기록했지만 우리선조들은 인간을 하늘이라 여기는 참으로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역사를 살아왔다.성경이 살아있는 생명을 제물로 바칠때 우리민족은 그들과의 화합 내지 인간화를 우회적으로 가르쳤다(熊女). 나의 삶을 위해 다른 생명조차 함부로 희생하지 않는다는,아니 그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생명경외에 어찌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단연코 성경 그 이상의 위대함이라고 말하고 싶다.우리 못난 후손들이 선조들의 위대한 삶을 비굴하게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이는 다분히 전제권력이 만들어낸 조형물이 역사의 전부라고 착각하는 서양사학자들의 물신주의를 잘못 받아들인 탓이다.인간을 노예처럼 부리며 무의미한 조형물을 만들기에 급급했던 왕조들의 삶에 경탄을 하기보다 그들의 비인간적인 무도함을 이제라도 역사의 이름으로 단죄하고 비판하여야 할 것이다.왕조중심의 스캔달이나 조형물에 집착하는 현재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역사가 바로 우리의 국사다.국사에 적어야 할 선조들의 고난과 좌절,그리고 인고의 삶에서 배어난 지혜,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너무나 인간적인 투쟁의
족적들.....그많은 극적 교훈들을 어찌 바이블의 수준에 비견할 것인가!

바이블이 중세적 물신주의와 감성적 언어로 가득차 있다면 우리의 국사는 인간경외의 위대한 철학으로 넘쳐 난다.성경이 가족과 집단,그리고 여호와 신에 종속되어 매달릴때 우리의 역사는 생명있는 것을 존중하는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뜨거웠다.

우리에게 아직도 실천해야 할 과제가 남아있고 이를 위해 한국민족주의는 그 어느때보다 뜨겁게 달궈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국사를 해체하는 일이 아니라 위대한 민족정신(홍익인간)의 족적을 다시 쓰고 실천하며 펴 나가는 것이다.

한계에 도달한 서구문명을 구원할 시대의 메시지가 바로 우리의 한국사에 있기 때문이다!(天-地-人, 그중에서 사람이 가장 중하다!)

 

 

                                           2003.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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