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문 慢想)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대통령 선거의 열기가 뜨겁던 2002년 여름 정적들은 어느 후보의 장인이 공산주의자였고 그가 부역을 했음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사실의 진위를 접어두고라도 정적을 거꾸러뜨리는 흑색선전의 소재로서 그이상 호재가 없어 보였다.

물론 상대편은 부친의 친일의혹이 시빗꺼리로 등장하던 때였던 만큼 피장 파장인 셈이었다고나 할가.

그런 와중에 그 후보는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설사 장인이 빨갱이라고 합시다. 그렇다고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 한마디!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감동을 주었던 이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필자는 그 한마디에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못할 소중한 가치가 있음을 느끼고 감탄했던 기억이 너무도 생생하다.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그렇다! 사랑은 이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감동적인 가치다! 우리는 그것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조차 기쁘게 바칠 수 있을때 고결한 아름다움을 보게된다.더구나 그런 장인의 흠결로 인하여 어린 딸이 성장하며 겪었을 수난까지 생각하며 모든 국민들은 얼마나 가슴 아파했었던가! 그리고는 얼굴 돌려 눈물 짓는 사람조차 많았으리!

오늘 우리는 대통령이 측근의 비리의혹을 견디다 못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하는 발표를 들었다.

그는 말한다.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다고 한다.선선하고 솔직한 모습이라고도 보여진다.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움이 남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그보다ㅡ 그 여름처럼 짠한 사랑의 감동을 느끼지 못함은 무슨 연유일까?
장인의 부역의혹조차 일거에 침묵시킬 정도로 우리를 감동시켰던 작년 여름의 사랑고백은 왜 지금 우리를 열광시키지 못하는가! 오랜 우정과 의리에서 동료의 흠까지 모두 떠안고 가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선뜻 따라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친구'를 통해 우정과 의리가 이시대의 가치인양 떠 받들어지는 시기에 그의 고백이 왜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일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
일찌기 이처럼 진한 부부애와 사랑고백을 들어보지 못한 우리가 그 여름에 느꼈던 감동을 왜 이번 경우에는 같은 순도로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어느 의미에서 그보다 더 감격적인 우정 내지 의리의 표출이라할 그의  발언에서 필자가 느끼는 서글픔과 연민은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사나이의 우정과 의리를 빙자하여, 동료의 흠결조차 모두 자신이 떠안고 가겠다는 무한책임의식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무한부담(無限負擔)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지 못할 이유는 당당하면서도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수난과 갈등의 역사에서 그 아내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그래서 우리는 감동했다.그리고 안도했다.그러나 오늘 그의 발언은 많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국제기준으로 보아 그자신은 물론 나라 전체가 더욱 의혹받을 만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현재 대통령이라는 공인이다. 그가 우정과 의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보스'에 머문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없다.우정이나 의리를 과연 이런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공인의 처신으로 적절한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더욱 우울하다.

나는 그가 지금이라도 빨리 '보스'(boss)에서 벗어나 '리더'(leader)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匹夫와 리더의 차이

                              2003.      10.        10.

 

                              박     상   문  (sun@law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