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나게 하는 대통령,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 (낡은의자글)

 

 한국 정치는 눈물의 정치였다. 우리 국민들은 이승만과 싸우다 급서한 신익희 조병옥을 눈물로 보냈고, 다음은 임자 차례라며 흘리는 박정희의 눈물에 청와대에 들어간 야당 당수 김영삼은 흔들렸다. 야당이라지만 사실은 왕사꾸라 창궐하던 여의도 정가에서 그래도 참 야당 지도자를 따르던 지지자들은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미국에 추방된 김대중의 육성 테이프를 이불 뒤집어쓰고 듣던 날 밤, 내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최루탄 지랄탄 터지는 보도 위에서 우리가 흘린 눈물은 무릇 기하며, 최초로 정권교체 되던 날 밤에 소주잔 위로 떨어지던 눈물은 기쁨에서건 안타까움에서건 우리가 정치에게 보내는 더운 진심이었다.

한국의 정치사, 배신과 야합의 더러운 정치 말고 진정 국리민복을 위하는 자들의 정치에는 언제나 눈물이 있었다. 국민의 눈에서 눈물을 부르지 못하는 지도자는 진정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오늘, 눈물이 있었다. 노대통령은 제주에서 4.3사태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서 사과를 해 참석한 제주도민의 자발적인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행사를 마치고 나가는 대통령 내외를 향해 '대통령님 고맙수다'고 부르짖는 제주도민의 함성이 터무니없이 여린 내 눈 시위를 붉혔다. 이런 게 바로 정치다. 국민들의 가슴에 묵은 한을 풀고 눈물을 씻어주는 것, 그게 정치다.

(참고글 : "노대통령 4.3 공식사과 안팎 "김대중 대통령에게 박수를" )

생각해 보면 노무현이란 정치인은 우리에게 어지간히 눈물을 요구했다. 민주당 후보가 되고 나서, 어딘가 노무현이 행사를 치르러 가는데 비가 억수처럼 왔단다. 도시에 들어서자 그 억수 같은 비를 맞아가며 노사모 회원들이 육교 위에서 노란 비옷을 입고 노짱 파이팅이라 적힌 펼침막을 들고 있더란다. 그 다음 육교에도, 그 다음 육교에도, 그 다음 육교에도 어김없이 그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는 그 잠깐 동안을 위해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기쁘게 노무현을 기다리고 있더란다. 그 말을 전하며 노짱도 울었고, 나 또한 그랬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도 그러했으리라. 대선 기간 내내 노무현은 우리를 그렇게 울렸고, 그것은 정말 오랜만에 자발적인 지지와 행동을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다. 노무현이란 정치인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도 된다. 그 눈물의 기대와 그 눈물의 의미를 배신하지만 않는다면.

악어의 눈물

또 다른 의미의 눈물도 있었다. 이회창씨는 SK 비자금 관련 대국민 사과를 통해 못난 자기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며 지지자들의 눈물을 간청했다. 글쎄... 선거에도 진 칠순 노인네가 진심으로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자니 눈시울이 뜨거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는 말이 항간에 많이 돌아다니던가? 난 과문한 탓에 들어보질 못했다.

아무튼 그는 史랑님의 명칼럼처럼 노태우 닮은꼴로 징징 짜며 우리에게 사과를 했고, 우리는 이회창표 사과를 받긴 했다. 나는 물론 이회창씨를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그의 품성이 학을 닮았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물론 서영석님 말처럼 그의 인품이 나쁘지 않을 수도, 아니 좋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품과 무관하게 그가 작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였다는 것이 바로 그의 잘못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누군가 나서서 그럼 작년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를 찍은 천만 명이 다 잘못이었단 말이냐고 화를 내는 분이 있겠다. 물론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가 지지한 정당이 불법 탈법을 저지른 부분에 대해선 그런 당을 지지한 사람으로 당을 올바로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하고, 나의 충정에도 불구하고 후안무치한 불법을 자행한 당 수뇌부에 대해 분노해야 마땅하다. 그게 자기 정체성에 솔직하고 정당한 자의 처신이다. 그런 자기반성과 분노 없이 그저 나라의 절반이 잘못이냐 운운한다면, 무식은 유죄란 말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옛날 다른 나라 일이다. 이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의 비시정부 수반을 맡은 페탱은 독불장군으로 소문난 드골보다 인간성이 좋았다고 한다. 전하는 말로 드골은 망명정부 세우는 기반 대줘, 밥 먹여줘, 같이 싸워주기까지 하는 영국 수상 처칠에게 권총을 뽑아들고 억지를 수시로 부렸다니 말이다. 하지만 페탱의 인간성이 어땠나와 무관하게 그는 나치에 부역한 죄로 사형을 언도받았고, 감형 끝에 유배된 섬에서 외롭게 죽었다. 일차대전 당시 베르덩 전투에서 프랑스를 구한 전쟁영웅이었던 페탱은, “나는 프랑스를 최악으로부터 보호했다... 만약 내가 프랑스의 칼이 될 수 없다면 방패라도 되려고 했다.”는 말로 나치에 부역한 자기를 변호했지만, 그의 변명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사형을 선고받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조국을 배반한 자의 운명은 이러해야 마땅하다. 조선일보가 민족지 정론지를 자처하는 지금, 반민특위를 깨뜨려버린 독재정권을 그냥 방치해둔 대가를 지금에 와서 얼마나 비싸게 치르는 중인지 탄식이 절로 나온다. 다시 말해서 페탱이 부역한 게 죄지, 인간성 좋은 건 문제가 아니란 거다. 역사는 비정하다. 쓰되, 버릴 때는 무참하다. 이회창씨 또한 역사가 쓰고 버리는 패인지, 쓰기도 전에 용도폐기한 패인지는 앞으로 펼쳐질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서 님들이 판단하시라.

그래, 백보를 양보해서 이회창씨는 비자금 건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치자. 그럼 무죄인가? 그래도 유죄다. 그는 시대의 요구를 배반한 죄인이다. 역사의 법정에서 그는 죄인이다. 다시 말해 저번 대선에서 국민들은 돈을 쓰든 지역감정을 부추기든 이기기만 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한국정치가 선진화되고, 그래서 적어도 국민들이 정치인 보고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정치를 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그런 염원과 시대적 소명을 깡그리 부정하는 금권정치를 자행했다.

도대체 기업하는 사람 불러서 돈 내라고 을러대고, 받은 돈 영수증 처리는 고사하고 후보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지금까지 한나라당 관계자 진술은 그렇다. 이씨에겐 말 안했다는 거 아닌가?) 컴컴한 지하실 주차장에서 간첩 접선하듯 쇼핑백에 담아 주고받은 짓거리가 무슨 짓거린가. 이런 부끄러운 짓을 저지른 한나라당 전 총재요 대통령 선거 후보가 죄가 없다면, 누가 죄인인가? 하라는 정치개혁은 마다하고 더러운 뇌물과 더러운 방법으로 돈으로 표를 사려했던 자들이 과연 누구인가.

그런 이가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서 그저 모든 책임은 제게 있다고 말하면 국민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턱이 없다. 하긴 그도 처음부터 그런 기대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 참을 수 없는 정권에게 아무 이유 없이 탄압 받는 노정객의 모습에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리며 모여들 과거의 지지자들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진실만이 인간을 감동시킨다. 링컨의 말처럼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감동의 정치, 눈물의 정치를 펼치려는 자는 마땅히 진실해야 한다. 이회창씨 사과문엔 눈물도 회한도 부끄러움도 자책도 모두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딱 한가지만은 빠져 있다. 바로 진실이다. 그게 없는 그의 사과는 악어의 눈물이다. 학처럼 살고 싶었던 인간 이회창에겐 연민이 간다. 하지만 정치인 이회창의 눈물 앞에선 그저 조소만 지어질 뿐이다. 이러구러 갈 수밖에 없게 된다면, 잘 다녀오길. 겨울에 들어가자면 솜옷이 두툼해야 할 텐데...

모든 이/어려운 이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노대통령과 이회창씨의 눈물을 비교해보면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의 문제다. 한국민들이 현재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가 말이다. 제주도민들이 고맙다고 말하자 노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의 작은 조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해줘 감사드린다.”

암스트롱이 그랬다.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겐 커다란 첫 걸음이라고. 달 착륙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달엔 토끼가 없더란 전설파괴인가?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암스트롱의 달 착륙을 통해 비록 옥토끼 한 마리는 잃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인간 존재의 한계를 확장하고 우리의 희망을 넓혔다.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암스트롱의 발언은 과장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작은 조치”라고 말한 그것은 사실 작은 조치가 아니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 학살이 국가의 잘못으로 빚어진 것임을 공식적으로 시인하고, 배상과 후속조처를 하겠다는 언명 아닌가. 다시 말해 우리의 굴절된 역사를 진실의 이름으로 불러 바로 펴겠다는 조치가 아닌가. 어찌 작은 조치이며, 왜 기립박수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설령 계산된 발언이라고 해도 좋다. 그 박수를 기꺼이 전임 정권에게 돌리는 그의 용기와 겸손과 지혜로움에 그를 지지한 내 기분은 한없이 올라간다. 저런 지도자를 뽑은 우리 동지들, 같은 겨레에게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한 가지 말씀드리고자 한다. 주제를 넘는다고 비난하셔도 할 수 없다. 당신 때문에 흘린 눈물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할말은 좀 해야겠단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는 거야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한 방에 해결할 묘수가 없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대통령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당신이 말한 그 작은 조치란 겸손과 성의, 공을 전임자에게 넘기는 그 지혜로움으로 제발 분신 노동자 유가족들을 위로해주길 바란다. 이런 어려움을 겪게 되어 참으로 안타깝다고 위로해주고, 국정의 책임자로서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작은 약속을 기대한다.

안 되는가? 당신을 지지한 사람들 중에 노동자 농민이 빠져 있기 때문에 안 되는가?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만으로도 우리 경제가 회복되기 힘들기 때문에 안 되는가? 조중동이 나서서 대통령이나 되는 자가 온갖 초상집마다 문상 다녀야 되겠느냐며 이죽거리기 때문에 안 되는가? 대통령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당신을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그들도 이 나라 국민이다. 당신이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시민이며, 아버지며, 남편이다. 남은 자들의 분노와 슬픔과 서러움을 당신이 닦아주면 정녕 안 되는가?

읽어주신 님들의 평안을 빕니다.
낡은의자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