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둥시평)

 

노무현 정부의 추락과 '망딸리떼'

 

 

노무현의 골프, 그 정당성의 허전함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주말에 부부 동반으로 골프를 쳤다고 한다. 뭐 대통령이 골프치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은 없지만, 같이 라운딩 한 사람이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었다는데 시선이 쏠리고 있다. 강 회장은 그 골프장의 실제 소유주로 노무현 대통령의 이기명 후원회장의 용인 땅을 18억에 사들인 사람으로, 그런 사유로 국감의 증인으로까지 불려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모처럼 시간을 내 골프를 친 것”이라고 했다지만, 과연 이것이 문제없는 일인지 되돌아볼 일이라 하겠다. 노 대통령이 판단하기에는 이기명씨와 강 회장의 거래가 정당했고, 때문에 인간적으로 고마워서 그 보답으로 같이 라운딩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맞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 정당성은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국민이 그런 대통령의 정당성을 인정해 줄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사실을 혹시 잊은 것은 아닌가 한다. 바로 이런 판단과 행동이 싸여 노무현 정부의 지지도를 바닥 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중대한 실수보다 오히려 이런 작아 보이는 문제점들이 국민의 실망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때가 된 것은 아닌가 한다.


상대를 믿게 만들 때 진실이 된다.

인도에서는 본인이 죽었다고 행정처리 된 것을 바꾸기 위해 몇 년을 노력해야만 했다는 실화가 전하듯, 의외로 사실을 사실로 믿게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가 힘든 이유는 ‘진리’를 외치거나 주장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동료 정치인과 국민에게 믿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있다. 이것이 정치의 슬픔이기도 하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본질적 정책이나 인물의 우수성이나, 본질적 정당성과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포장되느냐가 더 중요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장 자극적인 단어로 말한다면 정치는 ‘선동’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정치에서 선동은 필요악적인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이성적 감성적 절대 지지’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본질이라고 믿었으나 그것은 허상일 뿐이었다. 바로 당시 독일 사회에서 무언가가 히틀러를 지지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동이 히틀러의 예처럼 나쁘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을 제시할 때 모든 정치인은 이러한 선동을 통해 국민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고, 그래야만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낼 힘이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경제공황에서 벗어날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이 보여줬던 추진력도 이런 선동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미국의 금융과 신용제도가 마비 상태였으나, 그는 놀라운 속도로 수세대가 걸렸어야 할 일을 뉴딜정책으로 빠르게 해내기도 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의 본질적 위험성을 알고 있어야 하며, 그래서 언제나 권력을 가진 정치인과 집단을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거나,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데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어떤 정책을 실시하는데 있어서, 국민과 하나의 마음을 만들어내어야만, 그 추진력을 바탕으로 개혁을 시행할 수 있다. 바로 위정자는 국민을 설득해서 한 마음으로 개혁을 할 수 있게 해야만 무언가 성과를 얻어낼 수도, 또한 빠른 개혁도 가능한 것이다.


망딸리떼가 비어 있는 노무현 정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여러 가지 일은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는 그 성과가 들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여전히 30%대의 지지율에 헤매고 있으며, 또한 칭찬보다는 욕이 더 많은 상황이기도 하다. 냉철히 말해서 무언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도 속 시원한 명쾌한 해설을 듣기 힘들다. 아무리 들어봐도 뭔가 빠져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노무현 정부는 무언가 열심히 해왔는데, 그를 지지하던 이들이 그렇게 극렬하게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혹시 노무현 정부가 망딸리떼를 잊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망딸리떼란 반드시 의식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집단적 가치관을 말한다. 조한욱 교수는 망딸리떼를 “지리나 기후와 같은 장기지속적인 조건에 의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집단적인 사고방식, 생활습관 같은 것을 의미한다.”([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조한욱 지음 p39)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말로 하면 집단적 정서라는 뜻에 가까울 듯 하다.

우리의 판단에는 냉철한 이성적인 부분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정서에 더 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투표에서 나타나는 지역주의도 이러한 망딸리떼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어떤 집단적 ‘막연한 믿음’을 설명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머리로는 이해가 되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을 접했을 때, 우리는 이러한 망딸리떼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초기 대북 송금에 대한 특검을 받아들였다. 그러한 판단이 정당했거나, 아니면 정치적으로 혹은 남북관계를 열어나가는데 있어서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부담이 있는 결정이었다. 그랬다면 김대중의 후원(김대중 지지자들의 지지)을 얻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최소한 그들에게 어떤 액션이라도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바로 터진 인사문제, 민주당 내분 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게 강요한 면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토록 ‘분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그 후 노무현 정부가 펼친 많은 일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조선과 동아라는 거대 보수언론의 영향도 적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제대로 국민적 정서를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사고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앞으로 행동에 있어서 깊이 숙고해봐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노무현은 망딸리떼를 잊어서는 안된다.

노무현은 개혁을 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든 국민을 설득하고, 동료 정치인을 설득하고, 관료를 설득해 나가야 한다. 그것은 단지 옳은 것을 외치거나, 주장한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행동은 학자나 시민운동가나 할 수 있는 자세다. 노무현은 정치인이지 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는 결코 옳은 일은 하려 했다는 것 자체로 면피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바로 그것이 구체적 성과로 나타나게 만들 ‘의무와 책무’가 노무현에게는 있는 것이다. 이를 회피하거나 변명하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무현은 성공보다 실패를 많이 한 정치인이다. 그러나 그가 성공했을 때는 바로 국민의 망딸리떼를 제대로 파악했을 때다. 첫 부산 국회의원 선거가 그랬고, 지난 대선이 그랬다. 그러나 노무현이 된다고 생각했어도 국민의 망딸리떼를 잘못 읽고 한 모든 승부에서 그는 철저히 패했다. 맞다. 그 패배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지금 노무현은 실패하면 안된다. 그것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역사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개인의 성패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개혁은 성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노무현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 노무현에게는 그 회피할 수 없는 역사적 사명이 던져져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하고, 우리 사회가 바뀌어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지난 기간을 면밀히 검토해 봐야 한다. 바로 국민의 망딸리떼를 얼마나 제대로 파악하고 일을 추진했는지 말이다. 다시 말해 얼마나 국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나가려고 했는지 점검해봐야 하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는 굴곡과 왜곡의 역사였다. 우리 국민은 자랑스럽게도 이러한 아픈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고통을 겪으면서 그 압제를 이겨냈지만 그 굴곡과 왜곡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아 왔다. 때문에 이 한반도 남쪽의 독특한 정서가 있다. 수많은 대통령과 정치인의 비리를 보며 그들을 불신해왔고, 이미 불신은 어떤 정점에 도달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믿지 않는다. 노무현마저도...... 이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노무현의 골프는 정당했으나, 대통령의 골프는 봐줄 수 없다. 노무현의 막말은 이해할 수 있으나, 대통령의 막말은 천박하기 그지없었다.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국민적 정서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노무현 정부를 30%대에 묶어 놓고 있는 것이며, 해방이후 처음으로 검찰이 국민에게 그렇게 높은 인기를 구가해도 검찰을 독립시켰다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응은 쌀쌀한 이유인 것이다.

옛 말에 '배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그러데 노무현 대통령은 ‘나는 떳떳하다’고 외치며 계속 배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맨 것은 아닌가 검토해 볼 일이다. 개인 노무현은 믿을 수 있으나, 대통령 노무현을 믿어줄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측근의 비리가 없었던 시절이 없었던 우리사회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정서를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지난 주 골프 회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게 국민에게 의혹거리를 던져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민은 검찰 독립보다 골프가 더 크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것을 제대로 파악 못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커다란 맹점인 것이다. 골프라는 사소한 것이 거대한 개혁을 방해해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대통령부터 다시 한번 진지하게 반성하고, 이제 소아에서 벗어나 개혁이라는 대아를 봐야할 때가 온 것은 아닌가 한다. 아직 국민은 그렇게 권력을 믿을 수도 없으며, 또한 그렇게 바뀌는 대통령 주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아니 개혁이 성공하려면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다시 한번 되돌아 봐야 한다. 진정 개혁이 중요한지, 그것을 꼭 이룰 이유가 있는지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하고 싶면, 이제부터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당성’은 쓰레기  통에 집어 던져야 한다. 노무현 개인이 보는 ‘정당성’은 집어 던지고, 국민이 보는 ‘정당성’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개혁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3-11-05 오후 03: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