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문 시론

 

   뱃멀미하는 대한민국號 선장

 

 미국 보스턴 항에 정박중이던 상선에 인디언을 가장한 일단의 청년들이 야반을 이용하여 기습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들은 '아담스'의 지휘아래 선박에 실려있던 茶를 바다에 버리고 도주하였다.영미전쟁,더 정확히는 미국독립전쟁의 서막을 여는 순간이었다.천부의 권리를 주창하는 근대 시민혁명의 아침은 이렇게 찾아왔다.

 혁명은 언제나 작은 사건에서 물꼬를 트게 마련이다.

 지금 우리는 혁명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지나 않은지? 어디서 起暴할 것인지?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더구나 이나라 대통령의 입에서 "시민혁명"이란 용어가 주저없이 나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불안은 증폭된다.

 혁명이란 단어는 민주주의란 용어만큼이나 숱한 誤用이 이루어지는 말이다.

흔히들 야심과 독재적 권력욕에 눈이 어두운 부류들에 의하여 민주주의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격렬한 비이성적 광신집단의 정치논리로서 "혁명"이 차용되기 일쑤다.

 남의 나라까지 찾아볼 필요 없이 바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편집증적 권력욕에 미친 박정희일당이 민주적 의회정부를 짓밟은 반란을  "5.16혁명"이라는 용어로 채색하는 것을 보아왔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用例에 넋을 빼앗긴채 익숙해져 있는 실정이다.

 노무현대통령은 현직대통령의 신분으로 자신의 열렬한 지지집단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약칭: 가수 노사연의 펜클럽이 아님)모임에 참석하여 "시민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참으로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수 없다.

 물론 그의 의도가 비록 시민혁명이란 자극적인 용어선택을 했을망정 시민의 자발적 운동으로 정치개혁을 이루자는 의미라고 순화시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조금은 신중치 못한 감을 지울수 없다.

 혁명이란 용어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할 사람이 아닌 현직대통령인 전직변호사 노무현의 입에서 그런 용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길거리에서 화염병 던지는 근로자들을 탓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혁명이란 주권자의 교체를 의미한다.

프랑스혁명은 '짐이 곧 국가'라는 군주주권에서 시민주권으로 가는 투쟁이며,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부르죠아 시민계급에게서 무산자계급으로의 주권변동을 의미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혁명할 상황인가?

우리나라 헌법은 주권의 소재에 관하여,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고 선언한다.主權在民의 헌법하에서 혁명운운함은, 더구나 최고통치권을 위임받은 현직대통령의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이는 분명 뭔가 크게 잘못된 상황이다.주권자는 언제든지 체제전반에 관한 결단에 도달할 권능을 보유한다.대통령이 시도하는 개혁은 주권자인 국민의 동의하에서만 가능하다.말하자면 진정한 의미에서 "혁명"을 해야할 토양은 아닌 것이다.주권자의 동의를 끌어내는 방법으로 시민혁명이란 자극적 표현을 동원했다면 너무나 큰 오류를 범한 것이다.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선서하였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헌법 제69조),   헌법준수와 국가보위의 책무는 대통령이 맡은 가장 중요한 의무다.대통령은 헌법상 분립된 3권중 행정권의 수장이기도 하지만,보다 더 통합과 조정권력으로서의 기능이 중요하다.그런 사람의 입에서 혁명이란 말을 그리쉽게 토하는 것은 다른 깊은 뜻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노무현대통령이 말한 '시민혁명'의 실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본인은 입을 다물고 대변인등 주위의 입을 빌려 시민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달라는 당부 정도라고 희석시켜 설명하지만, 어디 대통령의 발언을 격하해서 쉽게 무마될 일인가!

국가원수의 입에서 떨어진 말은 다시 담기가 어렵고, 모든 통치행위의 기준으로 작용한다.모택동이 직접 폭력적 문화혁명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 하더라도,反語的 교시와 접견만으로도 홍위병의 난동은 가능했으며 그로인한 국가적 손실은 고스란히 중국인민의 몫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하물며 이나라 최고 통치권자 입에서 그의 일방적 지지자들을 향해 그런 용어가 튀어나오는 것은 불순한 동기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일찌기 군사반란에 성공한 박정희가 자신이 무너뜨린 민간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무차별로 베껴 마치 자신의 독창인듯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이름으로, 아랍의 낫셀을 흉내냈다가 국제적으로 망신당한 일이 있었다.

 통치권자의 입에서 혁명이란 용어가 나온 후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한 불순한 기도가 뒷따랐음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독재적 권력야욕을 혁명이란 비이성적 상황으로 치장하여 달성할려는 것이다.히틀러가 그러했고,무쏘리니가 그러했으며,중국의 문화혁명이 그러했다.

대통령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혁명(的 변화)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대통령은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전투적 편가르기 인상을 주는 발언을 하기보다 전체 국민을 상대로 개혁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개혁號가 항해하는 기착지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제시하여 꿈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

낡고 부패한 정치배들의 주술에서 깨어난 시민들의 의지가 순수하게 전달되는 정치시스템을 향한 진군은, 마치 근대시민혁명이 산업혁명을 기저에 깔고 진행되었듯이 여전히 내연하며 진행중이다.

정보화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숨어서 음모할 공간은 없다.정치권력을 몇몇 간특한 참모들과 전리품으로 분배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이것은 어느 선동정치가의 연설로서가 아니라 사회전반에 걸친 생존양식과 意識으로서다.

 낡은 지배층의 혁명적 도태만이 이나라의 변화를 기약할 수 있다는 대통령 발언의 근본취지에 동감한다.그러나 이것만은 엄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대통령 자신도 청산의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 말이다.개혁이 자신만을 예외적으로 비켜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은 모든 사람을 불행으로 몰아 넣을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이 직접 그의 지지자들 앞에 마치 야전군사령관처럼 나서서 호소하는 모습은 지극히 불안하고 소모적이다. 양의 많고 적음으로서 호도할려는 시도마저 더욱 그러하다.연초부터 대통령의 경망스런 언행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더니 이제는 점점 그 강도를 더해 '혁명'이란 말까지 대중연설로 듣게된 상황이 서글프기조차 하다.

 대통령은 비록 헌법상으로 형사면책이 주어지지만 내란과 외환의 경우에는 예외다. 진정 노무현대통령의 의중이 시민'혁명'을 의미한 것이라면,헌법상 설치되어있는 의회등 기관의 프로세스를 무시하는, 더 나아가 비헌법적 프로세스를 통해 혁명적 과업을 달성하고자 기도한 것이라면 내란죄가 논의될 여지조차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보다 신중한 언어 선택이 요구된다.

 대통령 못해먹겠다거나, 신임투표를 하겠다거나, 정계은퇴를 하겠다는 발언까지는 국민들이 고통받고 불안해지는 정치적 파장으로 끝나겠지만, '시민혁명'이란 용어는 지극히 부적절하고 심지어는 법적인 책임문제까지 뒤따를 수 있는 어리석은 용어선택임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미 개혁에 착수할 시대적 상황과 논리는 충분하고, 국민적 합의도 이루어졌다.

다만, 이 시기에 노무현 스타일의 항해자가 적절한가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콜럼버스는 나침판 하나에 의지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했다.그에게서 찾을 수 있는 위대함은 철의 신념이었다.처음의 약속과 다르게 오랜 항해에서 지치고 병든 선원들의 반란이 잇따랐지만 그는 선장 못해먹겠다는 극단적인 말을 하지않았으며, 흔들림없이 계속하여 서쪽으로 키를 잡았다.

그에 비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많이 흔들리고, 심지어는 멀미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안타깝고 실망스럽다. 대한민국號에 타고 있는 국민들은 선장의 흔들리는, 그리고 멀미하는 모습에서 더 큰 불안과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항해중에 거친 파도는 너무나 당연하다. 항해자에게 바람도 파도도 모두가 우리편만은 아니다.아니 파도가 거셀수록, 바람이 세찰수록, 대양이 선장의 의지와 신념을 뒤흔들수록 신바람 나는 항해가 아닌가! 야당과 언론, 그리고 반대파의 흔들음은 대추나무에 더 많은 열매가 맺히라는 격려일 따름이다.

달콤한 밀어를 속삭이는 아첨배들이나 맹목적으로 열광하는 지지자들에 경도되기보다,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야당과 언론의 역할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바람이나 파도가 싫다면 대양을 건너는 항해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요즘 대통령의 모습은 파도나 바람이 두려워 어머니 치마폭으로 숨어 들어가는 어린애 같다.뭐가 두려워서 일년이 다가도록 한치 앞도 못나간채 손을 놓고 있나?

키를 잡은 선장이 먼저 멀미하고 구토하며 흔들린다면 출항하지 않음만 못하다.그에게 개혁호의 선장을 맡겨야할지 걱정스럽다.

목적지에 닿을때까지 신념을 갖고 키를 잡는 모습이 아쉽다.

멀미를 심하게 하는 체질이라면 선장이 될려고 시도하기전에 먼저 증상부터 치료했어야 맞을 것이다. 항해중에 선장이 멀미땜에 하선하겠다고 한다면 온 세상이 웃을 것이다.

자신은 솔직하다거나 소탈함을 내비칠려고 하는 말이겠지만, 아니 어쩌면 더큰 정치적 암수를 숨기고 국민들의 동정적 여론을 일으킬려는 의도였겠지만,너무나 치졸하고 당당하지 못한 모습이다.이제 대통령으로서의 체통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그의 권위는 곧 국민의 자존심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2003.        12.         24.

 

                               박          상        문 (sun@law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