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문 시론)

 

  우리시대, 박정희는 무엇인가?

 

  그는 군사쿠데타를 성공하여 민간정부를 무너뜨린 후 자유와 민권을 압살한 대가로 단군이래의 가난을 물리친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되어 마땅한 자인가? 고등학교 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를 꼽는다는 사실보도를 접하면서 정치적 최면상태는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하게된다.

 얼마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한 북한 응원단 여성이 거리를 지나다가 존경하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가 비맞고 있는 것을 보고 눈물 흘리며 애통해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정치적 최면선동의 결과로 빚어진 의식지배가 얼마나 심각하게 인간성을 파괴하는지 똑똑히 보았다.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비웃을 자격이 있는가?

우리는 과연 그런 정치적 최면상황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지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섭섭하지만 우리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아직도 우리에게 상흔으로 남아있는 악령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해방을 맞은지 60년이 되었음에도 민족을 온전히 말하지 못하는 우리의 비극은 누가 만든 것일까? 개혁과 청산이 이처럼 완고하게 저항받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한가운데에 박정희가 도사리고 있음을 발견하고 우리는 섬찍하도록 전률을 느낀다. 그렇다! 박정희를 비켜서 나아가지 못할 것을 알게된 이상, 이제 그를 역사의 광장으로 끌어내야 마땅하다.

 박정희,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수구언론과 기득권 골통들이 저항선으로 여기는 박정희의 해체작업이 개혁에서 갖는 의미를 깨닫는다면 오늘의 논의는 참으로 의미있고 중요한 작업이다.먼저 그의 배신주의적 성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복으로 갓 태동한 민간정부가 북한의 군사작전으로 위기에 처했을때도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에 충실하기보다 야만적 욕심으로 동분서주하였다.기회주의자로서 그의 진면목은 남로당에 참여하였다가 배신한 때로부터 시작하여 전란시에 참모총장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노리기까지 한마리 기생충으로서의 역할을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라 일신의 검은 욕심을 채우기 위한 비열한 기회주의만이 가득하였다.

 그는 조국을 배신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처럼 보인다.

일제의 참혹한 식민통치가 극에 달했을때 그는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충성을 맹세하며 자신의 몸과 혼을 바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던 그가 해방된 조국에서 지난 죄과를 반성하기는 커녕, 조국을 쏘비엩에 팔아넘기는 적색비밀결사에 참가하였다는 사실에서 또한번 그의 진면을 확인하게된다.

그가 이념적 성향에서 비밀지하조직원이 되었다고 치자. 그러나 다시한번 그는 우리를 깊은 회의속에 몰아 넣는다. 동지를 배신하여 자신의 생명을 구걸하는 비천한 모습으로 변함없는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조국이 누란의 위기에서 배신자 박정희를 다시 불렀을 때 그는 또다시 천래의 배신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기회를 엿본다.그리하여 시도 때도 없이 허약한 정부를 무너뜨릴 기회만 노린다. 그야말로 민족배신의 변함없는 자세와 그 꾸준함에 우리는 감탄할 뿐이다.

그의 기회주의 배신자로서의 인생은 드디어 쓰레기 낭인들을 끌어모은 5,16 쿠데타로 절정을 이룬다. 세계 헌정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의 민권승리로 인정받는 4.19혁명을 총칼로서 무찌르고 주인앞에 총검을 들이댄 폭거가 바로 그의 쿠데타였다.그는 마치 독립만세를 부르는 우리민족앞에 총칼로써 대응하던 일제의 수법을 유감없이 답습하여 자유와 민권의 싹을 잘랐던 도둑, 아니 주인을 배신한 파렴치범이었다. 강아지도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법이어늘,국가의 방위를 책임맡긴 주인의 신뢰를 배반하고 그에게 쥐어준 무기로서 자신의 야욕을 달성한 사람이다.

그의 죄업은 백가지를 넘어설 것이로되 대강의 큰 줄기만 말하여도 아래와 같다.

 첫째, 그는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았으며  민족의 꿈을 빼앗았다.

우리민족사에 일제 침략식민기간 36년은 참을 수 없는 오욕의 순간이었다.박정희는 그 치욕을 다시 우리에게 안겨 주었다. 왜냐? 그는 깨어나는 독립자존의 피끓는 염원을 총칼로서 잘라내고 막 싹을 틔우는 민족정기를 또다시 깊은 잠속에 빠져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인도의 시성 '타골'이 아시아의 등불이라고 예언하였던 조국에서 세계역사상 '아름다운 혁명'으로까지 불리던 4.19학생혁명의 민족-민주-통일 열망을 무력으로 잠재운 그의 배덕을 우리는 열사들의 피맺힌 희생으로 치러야 했다.그가 뿌린 죄업은 전두환,노태우의 광란으로 계승되어 일제 36년에 버금가는 시련으로 이어졌다.

4.19혁명은 세계사에 민족민주혁명의 찬연한 금자탑을 세웠다. 영국이 그들의 명예혁명을 자랑하였으나,우리의 4.19혁명에서는 우리 모두가 승자로 우뚝서는 그야말로 진정한 명예혁명이었기에 더욱 자랑스러운 것이다.피끓는 젊음들이 피를 뿌리며 부르짖은 자유와 정의,그리고 그 젊은 함성을 가슴으로 받아들인 독립투사, 老대통령 이승만, 인류역사상 그 어떤 드라마보다 감동적인 장면에  세계는 경탄하였다.위대한 철학을 지닌 민족이 아니면 불가능한 사건이었다. 과연 한국은 위대했고 우리 모두는 그 승리자였다.

그리하여 거리를 휩쓸던 젊음들이 이제는 민족 자주의 통일운동으로 옮아가는 힘찬 전진을 시작했으며,갓 탄생한 의회정부는 지리한 역정을 극복하여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새로운 국운개척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혁명의 열풍으로 거리를 내달았던 학생들이 국토건설단으로 참가하여 새로운 민주 통일조국건설에 앞장서기도 했다.새로운 조국, 희망의 세기가 열린다는 부푼 가슴으로 잠자던  의식이 드디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온나라가 가슴 벅찬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박정희의 음험한 배신작전은  음모되었다. 나라 전체,국민 모두가 진정한 민주조국,통일자주를 위해 자리잡아가던 5월 어느날 밤, 박정희는 그의 위치를 벗어나 주인이 쥐어준 무기로 오히려 주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꿈으로 들떠 있던 백의민족은 심야에 칼을 들고 침입한 하인에게 참살당하고, 그가 지녔던 꿈은 박살났으며,사랑하는 가족은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그가 살해한 것은 우리의 꿈이었고,자주였고,사랑이었다.그야말로 인간 배덕의 극을 실천한 셈이다.

 둘째, 그는 우리사회에 부패를 착근시키는 죄업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박정희는 군부내의 부패기술을 그대로 정부조직에 침투시켜 이나라 사회를 총체적으로 썩게 하였다. 박정희 패거리의 집권이전에는 정치하는 자나 공무원 사회에 현재와 같은 부패구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당시의 경제구조가 빈약한 탓이기도 하였겠지만, 부패쇠사슬이 군부로부터 민간사회로 급속하게 전이한 계기를 군사쿠데타에서 찾는 것이 정확한 판단이다.

당시 정보권력을 악용하여 대규모 부정부패를 도입하고 실천한 당사자(김종필이라 부름)가 아직도 모 정당의 지도자로 행세하고 있는만큼 그의 행적을 돌이켜 보면 실체는 명확해질 것이다.즉 현재의 대규모 부패구조는 박정희가 뿌린 원죄에서 비롯되었다.현재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안풍'이나 '차떼기' 등의 수법은 박정희에게서 전수받은 행동양식이다.그들은 주인을 배신하고 총칼로서 권력을 강탈한 비윤리성을 가감없이 적용하여 우리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어 근본이 없는 그야말로 일본식 천민 해적사회로 변질시켰다.

우리민족은 역사적으로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매한 정신적 가치를 지켜 내려왔다.주변의 제민족은 물론, 서양의 오랑캐들이 눈앞에 던져진 고깃덩이에 침흘리며 승냥이처럼 행동할 때도 우리는 인간과 생명에 관한 사랑, 그리고 천지의 도리와 가치를 추구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치나 공직에 대한 국민대다수의 인식은 특별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이른 바 '선비정신'에 바탕한 '멋'은 우리의 공직전반을 지탱해주는 정신적 지주였다.비록 시장바닥의 배추쓰레기를 주워다 먹을 망정 부정한 돈을 탐해 축재하지 않았던 열사 투사들(백범김구 또는 유석 조병옥의 사례)은 공직에 대한 특별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서만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이 온통 썩고 병들어도 선비는 물들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이 우리의 정치를 지탱해주던 그 시기에, 박정희 일파는 일제와 똑같은 수법으로 권력탈취극을 벌임으로써,거기서 더 나아가 탈취한 권력을 이용해 대형 부정과 부패를 시현해 보임으로써 공권력의 타락상을 일상화하는 일에 앞장섰다.그들은 권력을 사적 야욕으로 타락시켰다.그러므로써 공직사회의 부정부패에 그치지 않고 사회전반에 부패의 기운을 만연시켜 드디어 이나라는 정의가 실종된 야만의 천민자본주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돈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그야말로 패륜의 극치를 목격해야하는 무도한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정치권력의 교훈은 실로 크고도 무겁다.그들이 국민앞에서 저질르는 죄악은 많은 사람들가운데 잠재해 있는 범죄성향을 유혹하는 촉매로 작용한다.정권 상층부가 앞장서서 개발 차관 부패타락을 일삼으면서 국민들에게는 국민교육헌장을 암송하게 하는 국가권력의 위선과 기만성은 역사앞에 단죄되어야 할 것이다.그들은 총과 칼로써 권력을 도둑질 한 반역죄 보다 우리나라의 도덕적 기반을 무너뜨린 죄업이 더 크고 무겁다.그들은 결코 우리의 젊은이들이 숭배하고 존경해야 할 대상은 아닌 것이다.그들의 부도덕함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야말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출발이며 '친일청산'의 완성이다.

 셋째, 그는 우리 민족혼을 헐값으로 일본에 팔아넘긴 자이다.

가깝게는 그가 말살한 민족혼(4.19혁명정신)을 모독하는 행사를 거듭하였으며,더 멀리는침략자 일본에게 우리민족의 혼을 팔아 자신의 정권유지에 이용하였다.

일본과의 막 떨이식 비밀-굴종-매국협상으로 민족혼을 헐값에 팔아넘긴 죄과는 다신한번 우리민족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셈이다. 일제의 사죄를 변변히 받아내지도 않은 상태로 비굴하게 무상,유상원조(?)를 구걸한 그의 천민성은 민족사가 존재하는 한 지탄받아 마땅하다.그로인한 후유증에 죽은 독립투사들의 원혼은 잠들지 못하며,정신대 할머니들은 한이 서린 가슴을 닫지 못해 통곡하고 있다.

그는 김재규의 총에 맞아 며칠동안의 장송곡으로 눈을 감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사랑한 우리의 선한 백성들은 해방된 조국에서조차 자리를 잡지 못한채 구천을 방황하거나 거리를 떠돌고 있다.

박정희는 단순 친일배가 아니라,일본제국에 혼을 맡긴 주구(走狗)이며,앞잡이었다.그가 실천한 것은 패망한 제국주의 혼을 이땅에 심는 일이었다.우리가 청산해야 할 것은 단순 친일이기 전에 제국주의 혼을 실천한 박정희 바로 그것이다.다른 친일배가 수동적 생존양식으로서였다면 박정희의 과업은 패주(敗走)한 일본제국의 잔업을 충실히 실현하는 것이었다.그는 친일이 아니라 일본제국 바로 그것이었다.우리의 민족혼은 박정희에 의하여 철저하게 파괴되고 농락되었다.그는 전국민을 상대로 일제혼(日帝魂)을 강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까지 저당잡힌 민족반역자였다.그는 자주적 삶을 독재적 방법으로 탄압하고 노예적 굴종을 강요했다.박정희 일당과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빼앗긴 우리 현대사는 아직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중이다.

세계가 눈부시게 변화하는 시기에 우리는 그가 심어놓은 망국적 시스템을 벗지 못해 뼈아픈 진통을 아직까지 거듭하는 중이다.세대간의 내부 갈등과 혼란은 그가 뿌린 죄의 씨다.자주적 삶을 바로보지 못하는 착시현상 또한 그가 강요한 우민화 정책의 결과물이다.우리의 경제가 미풍에 흔들리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그가 던진 검은 욕심에 상처가 깊었던 탓이다. 위대한 민권의 승리로 자주적 삶을 기약했던 우리민족이 박정희도배의 무자비한 반역으로 주권을 유린당하고서도 아직 박정희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한 우리의 역사는 방향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일찌기 최익현 선생은 일제가 주는 음식을 받아먹지 않겠다는 의기로 이국의 하늘아래서 굶어 돌아가셨다.박정희는 기껏 5억달러에 민족의 자존심을 팔아넘김으로서 자신의 정권유지에는 성공했을망정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비굴한 패배주의를 뇌수깊이 심어 주었다.

이것을 '거지근성'이라 한다.개도 품종이 있는 종자라면 주인이 주는 먹이가 아니면 받아먹지 않는다. 박정희는 일제의 명확한 사죄도 없이 얼마되지 않은 원조(? 너무나 치욕적이다!)에 머리 조아리며 마치 강아지가 꼬리를 치듯이(당시 자민당 大野인가 하는자는 협상삽살개 김종필을 부자간이라고 모욕하였음)받아 먹는 모습을 전세계에 중계해 보여줌으로서 우리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자존심마저 빼앗았다.

그로인하여 일본은 우리나라를 이제는 고깃덩어리나 던져주면 꼬리치는 삽살개 정도로 오인하고 함부로 대하게 되었다.전국민의 눈을 가리고 일제와 비밀협약으로 타결지은 그의 굴종-밀매행위는 이제 하나 하나 그 진면을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일제는 한국을 안중에도 없는 듯  거듭하여 망언하고,자국을 은혜의 나라라고 강변하는 단계에 왔다.아니, 더 나아가서 평화선(속칭 이승만라인) 철폐를 탄원하던 입으로 이제는 독도영유권까지 운운하게 되었다. 부도덕한 정권은 통치수단으로 대의와 명분을 저 버리고 전국민을 부도덕과  타락으로 몰고 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인지 모른다.당시 일본에서 한국관광을 '기생관광'으로 불렸던 사실을 상기하면 충분하다.중국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본관광객들을 단호하게 대처하는 태도에 비견하면 더더욱 박정희의 진면을 이해하기 수월하다.일제 36년간 우리의 선열들이 피흘리며 지켜온 독립과 자존은 여지없이 짓밟혔으며,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받은 상처는 그보다 더 심각하게 우리 현실의 도착적 증상으로 남았다.정신대 할머니들을 주제로한 누드파문(이승연의 누드촬영파문) 역시 박정희의 통치가 이루어 놓은 민족혼 팔아먹기의 잔영(그림자)에 불과하다.

 그가 정권의 존립을 구걸하느라 헐값에 팔아넘긴 민족혼은 두고 두고 역사에 한을 남기게 되었다. 우리는 해방된 조국에서조차 일제의 멸시와 조롱을 받아야 하게 되었다.그들의 망언,망동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국민의 정조와 혼을 팔아넘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자신이 윤리와 도덕을 짓밟는 행위를 시현해 보임으로써, 야만스런 일군의 충성스런 장교임을 과시함과 동시에 우리민족을 타락시키는데 가장 큰 몫을 유감없이 수행하였다 할 것이다.

  넷째, 박정희는 우리민족의 우수성을 총칼로서 억눌르고 짤라내, 열등국민으로 끌어내리려 시도하였다.

 개인적 권력욕으로 민족의 자존심,시민적 자존심마져 철저하게 유린한 박정희 광마(狂魔)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이루어낸 우리 국민의 우수성은 아무리 찬양되어도 부족하다.그의 부도덕함과 독재적 탄압이 아닌 자주적 역량으로 나아갔던들 민족의 우수성은 더욱 빛났을 것이다.위대한 명예혁명의 기운을 총칼로서 침묵시킨 독재자 박정희의 시대착오적 망상으로서는 경제적 도약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각종 경제지표가 말해준다. 1970년대 후반,박정희의 통치하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수준이 필리핀을 넘어서지 못했다.자유는 피를 먹고 전진한다지만,경제는 자유의 토양위에 피어나는 꽃이다.우리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이 자유의 궤적과 같이 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전국민의 우민화(愚民化)를 기도하였고, 그 결과로서 평준화를 기획하였다.독재적 권력욕을 영구화하기 위해서는 전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야 하고 따라서 우민화는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그들에게 국민은 일제가 시도했던 것처럼 무지몽매해야하고,단지 기술적 부품으로써 우수성을 발휘하는 데 그쳐야만 했다.그들이 동원하는 광장에 일사분란하게 집합하여 독재자에 환호하며 열광하는,그리고 그와같은 맹목적 충성심이 필요할 뿐이었다.그들은 국민이 깨어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더불어 그의 무한권력추구욕은 북한의 김일성을 동반자로 하여 세습의 길을 가고싶은 충동을 느꼈을 법하다.그리하여 자신의 부족한 아들을 위해 교육제도까지 변개할 구실을 찾았는지 모른다.열등한 자녀에 맞춰 입시제도를 순차적으로 바꿔간 시간적 경과가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한자리에 모아놓고 눈을 감게한 후 새마을 운동이라는 미명하에 끊임없는 세뇌를 통해 자신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을 유도하거나, 국민교육헌장이라는 일제시대에나 가능한 주문(呪文)을 외우게 만들어 전국민에게 굴욕과 패배감을 안겨 주었다.말하자면 일제가 물려준 황국신민 신사참배교육을 해방된 조국에서 강요하였던 셈이다.

박정희를 아버지로 여기며 배신적 기회주의와 잔악성을 골고루 갖춘 살인배 전두환일당은 평준화라는 망국시스템을 가감없이 실행하기에 이른다. 드디어 우리민족의 우수한 경쟁력은 뿌리부터 잘라내졌다.다시 설명하자면,친일식민배 박정희가 민족의 우수성을 잠재우는 교육제도를 통해 독재권력의 영구화,세습화를 단계적으로 시도하다가 총살되었으나 그가 키우던 강아지 전두환이 졸개로서의 속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박정희에게 배운 살인실력으로 주인을 살해하고 안채를 차지한 전두환이란 도적은 그가 아버지로 여기는 박정희의 독재수법을 원색적으로 답습하는 우직함을 보여 주었다.음험한 승냥이 박정희에 비하면 전두환은 저돌하는 맷돼지였다.그는 신중한 고려없이 앞선 두목의 하향평균화 우민정책을 맹목적으로 추종 실천하였다.따라서 살인배 전두환의 죄업은 고스란히 박정희 자신의 죄업으로 돌아간다.

  박정희에게는 애초부터 조국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검은 욕심과 망국적 기회주의였다.그에게 진정 조국이나 민족이 존재하였다면 철옹성같던 독재정권을 맨손으로 물리치고 위대한 민권승리를 자랑하며,새출발한 민간정부를 한밤중에 도둑질하는 파렴치한 행동은 없었을 것이다.대한민국을 흘러넘치는 자유와 창조의 물결을 일순간에 침묵시키고 패망한 일본제국의 혼을 다시 끌어들인 그야말로 자유정신의 압살자,아니 민족배반노라는 비판이 주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혹자는 그가 개인적 치부를 하지 않은 점을 칭송한다. 그러나 이것은 박정희란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론이다. 박정희는 마치 북한의 김일성이처럼 영구히 대를 이어가면서 집권할려는 욕심으로 가득했었다.그에게 개인적 축재는 의미가 없었다.

독재적 강권통치로 민주적 정치질서를 언제든지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있는 자에게 구차하게 축재란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에게는 언제든지 필요한 권력이나 재산을 훔쳐가질 배덕성과 파괴성이 존재하는 한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축재가 불필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대한민국 천지의 모든 재산은 그의 사유물이었으며,그는 언제든지 독재권력을 동원하여 기업가를 협박하고 그가 일구어낸 결과를 일순간에 빼앗을 수 있는 의지와 장치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와같은 박정희의 무불 무한의 권력지향,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배신성과 기회주의는 우리 젊은이들을 정신적으로 타락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오늘날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합리성을 외면하고, 파괴적 비합리주의에 몰두하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박정희가 저지른 폭력적 배신성은 드디어 우리 젊은이들에게 조폭의 환상을 심어주었다.그가 심어놓은 멋없는 졸개근성으로 인하여 우리 젊은이들을 뒷골목 폭력배들을 미화하는 우려할 상황에까지 왔다.

박정희통치 이전의 깡패들에게는 그래도 일말의 멋이란게 존재하였다.뿐만 아니라 절대로 상대방을 뒤에서 공격하지 않는다는 정정당함이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무사도였다.그러나 박정희가 시범해 보여준 '밤중에 잠자는 주인 뒷통수 치기'수법이 전수되어 이제는 이나라 천지가 박정희식, 아니 일본 야쿠자식으로 뒤에서 회칼 사용하는 비겁함이 당연한 듯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행해진다.최고권력의 탈취가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토록 비열한 밤도둑을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하는 사회분위기가 이를 부추겼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광복된 조국에서 그 지긋지긋한 일제의 삶을 똑같이 되풀이 해야 했던 우리민족의 악몽을 누가 보상할 것인가?일제를 물리치면 우리 백성들의 삶이 한층 사람다워 질 것으로 여기던 국민들에게 박정희로부터 비롯한 군사깡패들의 만행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자조까지 흘러 나오게 만들었다.아니, 해방된 조국에서 같은 동포에 의하여 저질러진 극악한 만행은 우리민족에게 더 큰 좌절과 비참함을 맛보게 하였다.우리는 일제식민 통치로 빚어낸 수탈과 살인의 죄상을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비난하고 있다.일제의 죄상은 우리 '근대사를 유린'한데 있다.그와 똑같이, 아니 그보다 더한 강도로 박정희와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현대사의 광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데서 우리의 슬픔은 감당하기조차 어렵다.더욱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이땅의 언론과 지식인, 그리고 그들의 영향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박정희를 구국의 지도자로 착각하며 숭배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도 박정희가 우리의 구세주인 것 처럼 착각하는 무리들이 사회전반을 횡행 득세하고 있으니 그들을 수구꼴통이라 부르는 젊은이들의 비난을 탓할 수 만도 없지 않은가!너무나 지당한 비판이고 청신한 각성이어서 가슴 벅차기 까지 하다.

 우리는 일본인들이 그들의 침략만행을 사죄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으로 한국의 근대화,경제발전에도움을 주었다는 망언을 할 때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그리하여 우리는 입을 모아 그들의 망언을 비난한다.무엇 때문인가? 그들이 서구의 문물을 우리에게 선사했다는 말에 왜 우리는 분노하는가?그와같은 그들의 망언은 우리의 자존심,우리민족의 자존심에 찬물을 끼얹는 모욕이기 때문이다.그들이 말하는 경제발전,근대화라는 말은 다분히 우리민족을 업수히 여기고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분노한다. 우리민족의 우수성이나 자질로 미루어, 만약 그들이 강점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자신의 독자적 노력으로 발전했더라면 일제가 망쳐놓은 기형적 상태로서가 아니라 더 빛나는 나라로 발전했을 것이고, 또 그럴만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우리나라를 강점함으로써 우리자신의 무궁한 자기발전을 저지당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박정희의 업적을 칭송하는 언론과 기득세력의 망언에 부닥치고 있다.

박정희가 위대한 지도자요, 그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는 그야말로 일제의 망언수준에 버금가는,아니 그보다 더 치명적인 망언-광언(狂言)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의식의 해방을 맞지 못하고 있는 노예상태다. 일제 36년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가운데 공고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음을 경악할 뿐이다.그 가운데 수구언론도 존재하고 친일배도 섞여 있다.그보다 더 심각하게 박정희휘하에서 경제개발했다고 자부하는 착란증상의 5적(五敵)들이 존재한다.

 북한의 응원단이 그들의 경애하는 위원장 동무의 초상이 비맞는 모습에 눈물흘리는 수준을 가엽어 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의 수준 역시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기 때문이다.고등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박정희가 꼽히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우리의 앞날을 우울하게 한다.그에게서 배울점은 기회주의와 배신 배덕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젊은 학생들이 그와같은 민족배신,기회주의,정신분열증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우리 교육시스템의 업보다. 학생들은 여전히 망국적 우민화 교육시스템에 절어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그들의 우수성이나 자존심을 고양시킬 프로그램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있다.우리 교육은 학생들에게 노예적으로 문장을 외우거나 주어진 과제에 매달리는 일제의 식민지교육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교사도 학부형들도 새로운 개혁에 두려움을 느끼고 저항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노예로 살 것이냐! 새로운 문명에 적응하는 자유인으로 살 것이냐!그 한가운데에 박정희를 무엇이라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우리앞에 가로 놓인 그 모든 문제는 박정희 청산으로부터 시작하여야 실타래가 확실하게 풀린다. 우리에게 박정희는 무엇인가?  악몽이며, 굴욕이며, 좌절이며, 절망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결코 밝아 질 수 없다.우리사회에 안개처럼 서려있는 박정희의 망령을 걷어내지 못한다면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친일 인명사전의 편찬이나 일제청산작업등도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크고 중요하게 우리자신을 억누르는 일제의 망령은 바로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수구꼴통이다.우리에게 가장 상징적으로 일본제국주의를 심어준 친일파는 바로 박정희이기 때문이다.그는 두뇌만 황국신민의 충성심으로 가득찼을 뿐만 아니라,일제식민통치술을 독립된 이나라에 31년간(박정희 와 그 아류들) 강요한 사람이다.그가 심어놓은 민족정기 차단의 쇠말뚝은 우리의 의식속에 공고하게 자리잡아 우리 자신조차 깨닫기 힘들 정도이다. 우리들 의식속에,생활속에 서려있는 박정희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일제청산도 사회개혁도 공염불일 따름이다.

 

                              2004.          2.            19.

 

                              박             상             문  

                             (국제미디어통신 경영고문)

 

[참고]  연합 제7차 회의 발제로 이루어진 연설내용입니다. 즉답식의 발언이어서 다소            심정적인 용어가 가감없이 섞여 있음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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