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기원 (2) 남북방혼합설]청동기때 북방·남방·본토인 뒤섞여

석관묘·고인돌·벼농사·인골 형태 등이 근거

김병모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한 국인들은 민족과 종족을 가끔 혼동하는 듯하다. 종족은 좁은 의미의 Tribe의 개념이고, 민족은 광의의 People의 개념이다. 이런 혼동이 생기게 된 이유는 한민족의 형성과 한국고대사회의 시작을 단군(檀君)으로부터 보았기 때문이다.

고고학자의 입장에서 한국민족의 형성 과정을 생각하면 이 땅에 최초의 정착 주민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들은 신석기인들이다. 그 이유는 문화 발전 단계에서 구석기인들은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기후와 동물 이동을 따라 계절 이동을 하였기 때문에 어느 특정 지역 사람들에게 유전인자를 전해줄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마지막 빙하가 끝난 1만년 전부터 시작된 신석기 문화는 정착생활을 전제로 하고 농경과 동물 사육을 경제의 기반으로 삼아 유전학적 특성이 뚜렷해지는 때다.
한반도에 신석기 문화를 남긴 사람들은 빗살무늬 토기를 제작한 사람들이 주 세력이다. 빗살무늬 토기란 토기의 표면을 빗(櫛) 같은 도구로 선을 음각한 질그릇이다.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 서해안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기원전 3,000년대부터 약 2,000년간 유행하였다. 이 토기와 함께 동해안과 남해안에서는 볼록무늬(隆起紋) 토기도 유행하였는데 두 가지 모두 표면에 선과 점으로 요철(凹凸)을 새기는 기법이다. 이런 요철 무늬 토기의 분포는 일본에서부터 한반도를 지나 시베리아·독일·스칸디나비아·영국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쪽 한랭지대에 문화대를 형성한다.

반면 같은 시기의 중국 토기는 동쪽에서는 흑색 토기, 서쪽에서는 채색 토기로 나타난다. 채색 무늬 토기의 분포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서아시아·지중해에 이르는 지역에서 나타난다. 유라시아 대륙의 신석기 시대 문화는 남쪽에 채색 토기 문화대와 북쪽에 요철무늬 토기 문화대로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한국인의 형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차적인 문화 특징이다.

한국 신석기인들의 체질적 특징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경남 연태도(煙台島)에서 발견된 신석기인들의 인골을 측정한 결과 남자의 신장은 170cm, 여자의 신장은 150cm라는 것만 밝혀져 있다.

빗살무늬 토기인들이 정착농경생활을 하였다는 증거는 그들이 남긴 곡물 흔적으로 분명하다. 평양의 남경 유적과 진주의 남강 유적에서는 조(粟)과의 곡물이 무수히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작지의 흔적까지 뚜렷하다.

고인돌의 북방한계선은 한반도

일단 정착농경을 시작한 사회의 주민들은 곡물이나 가축 같은 사유재산이 형성되고, 사유재산을 약탈로부터 지키기 위한 남성의 전투력이 요구되는 사회로 발전한다. 그래서 구석기 시절의 모계사회가 신석기 시대부터는 부계사회로 변화한다.

무문토기로 대표되는 한국 청동기인들의 종족적 특징은 아직은 불분명하다. 청동기 문화는 메소포타미아에서 5,000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3,000년 전부터 나타났다. 이 문화의 특징은 구릉지대에 만들어진 원형 움집과 장방형 움집, 석관묘와 고인돌(支石墓)이다. 석관묘에서는 요녕식동검, 고인돌에서는 석검과 반달칼이 발견된다. 시기적으로는 석관묘가 고인돌보다 선행인 듯하다.

석관묘는 부여의 송국리, 더 북쪽으로 요하 지방을 지나 내몽골의 선비족 무덤에 이르는 지역에서 유행한 것이고, 고인돌은 한반도를 북방한계선으로 하고 한반도보다 따듯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현상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고인돌의 분포 지역은 중국의 랴오닝(遼寧)성·산둥(山東)성·저장(浙江)성 등 중국으로서는 황해 연안에서, 한반도에서는 전남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제주도까지, 일본에서는 한반도에 가까운 규슈(九州) 지방, 그리고 남쪽으로 대만, 인도차이나 전역, 인도네시아 전역, 말레이시아 그리고 인도 남부에서 발견된다.

한반도 청동기시대의 주민들에게 획기적인 경제방식이 소개되었다. 바로 벼농사다. 벼농사의 증거는 여주 흔암리 움집, 평양 남경 유적 등에서 발견되기 시작하여 전국에서 골고루 나타난다. 벼농사 기술의 고향은 어디인가. 열대 지방이다. 한반도는 벼농사의 적지가 아니다. 한반도에서 벼농사는 1년에 한 번 이상은 불가능하지만 열대 지방에서는 1년에 4모작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한반도의 청동기인들이 벼농사를 한 이유는 벼의 뛰어난 경제성 때문이다.

天孫신화와 卵生신화

아시아에서 석관묘를 만든 사람들은 유목민족 계통이고,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은 벼 농경인들이다. 문화 전통이 다른 두 계통의 주민이 한반도에 함께 살게 되면서 사유세계의 혼선이 있었음이 관찰된다. 유목민들의 신화 체계는 천손신화(天孫神話)이고, 농경인들의 신화는 난생신화(卵生神話)다. 그 두 가지의 신화 요소가 한국 고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모두 나타난다. 고조선과 부여의 천손신화, 고구려·신라·가야의 난생신화다.

천손신화는 수직하강 구조이고 난생신화는 내부에서 외부로 나오는 구조다. 기마민족의 천손신화의 주인공들인 박혁거세나 김알지·김수로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수직하강 구조이면서도 정작 알이나 동자(童子)로 태어나는 기술은 두 가지 신화의 요소가 혼합된 것이며 계통이 다른 주민들에게 모두 정당한 공감대를 만족시키는 내용이다.

이런 현상은 고고학적으로 설명된다. 초기에 석관묘는 구릉에 만들어졌고 고인돌은 평지에 만들어졌다. 즉, 두 가지 문화 주인공들의 생활영역에 구별이 있었다. 그러나 후기에는 고인돌과 석관묘가 한 묘역에서 나타나고 그 중심은 고인돌이라는 증거가 춘천 천전리, 진주 대평리, 전남 성동리에서 확인되었다. 기마민족이 농경인에게 흡수되어 가는 과정이다.

청동기 시대의 주민 중 종족적 특징을 지닌 인골이 발견되었다. 충북 제천의 황석리 13호 고인돌에서 나온 남자 인골은 기원전 410년경 사망한 것으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확인되었다. 이 황석리인은 신장이 170cm여서 현대 한국인 남자의 평균신장보다 크다. 이 사람의 두개골의 특징은 초장두형(超長頭型)으로 판명되었다.

현대 한국인의 두개골 특징은 모두 단두형(短頭型)으로 얼굴이 넓은 형인데 황석리인은 얼굴이 좁고 앞뒤가 긴 모습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개지수(頭蓋指數: Sephalic Index)를 설명해야 한다. 두개지수는 두개골의 전후를 폭에 비교한 수치로 한국인의 평균치는 80이 조금 넘는다. 그런데 황석리인의 두개지수는 70 이하였다.

70 이하의 두개지수는 유럽인의 특징이다.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이 한반도의 고인돌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인의 구성을 생각할 때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단서다. 고인돌은 중국 내륙이나 시베리아 초원지대에서는 단 한 개도 발견된 적이 없다.

고인돌을 서유럽에서는 신석기 시대부터 유행한 묘제이고 아시아에서는 인도로부터 동남아를 거쳐 한반도까지 연결되는 초승달형의 문화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아시아 고인돌의 분포 지도를 돌멘 크레센트(Dolmen Crescent)라고 부른다. 이 문화권에 살던 사람들 중 초장두형 두개지수를 지닌 사람은 인도인이다. 따라서 황석리인은 인도 계통의 사람으로 분류할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충북 제천 황석리인은 인도인

중국에서는 고대 왕조가 바뀔 때마다 이민이 발생하였다. 은·주(殷周) 교체기인 기원전 11세기, 전국시대 진(秦)의 통일에 따른 수많은 제후국의 멸망은 난민의 발생을 초래하였다. 은·주 교체기에 한반도에 청동기술이 전래된 것은 오비이락(烏飛梨落)의 현상이 아니다. 기술집단의 이민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 동이족계 사람들이 한반도 북쪽으로부터 이입되었음이 요녕식 청동검의 출현으로 설명된다. 진시황의 강제노역을 피하여 마한으로 이민한 진인(秦人)들이 진한(辰韓)을 구성하여 신라인이 되는 과정은 ‘삼국지’ ‘삼국사기’ 등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문제는 넓은 진나라 영역의 어느 지역 출신들이 한반도로 이입되었는가를 연구해야 할 단계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진인-진한인-신라인으로 연결된 사람들이 후에 신라어를 사용한 사람들이었고, 그 신라어가 모체가 되어 현대한국어가 알타이어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면 최초의 이민 진인들은 알타이 산록 주변 출신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진시황의 노역에 강제로 동원될 수밖에 없었던 알타이계 사람들로는 간쑤(甘肅)·칭하이(靑海) 지방에 살던 흉노족의 일파였을 것이다.

다시 4세기에 일어난 스텝 지방의 소한기(小寒期) 때문에 대규모의 유목민족들이 남쪽으로 이민할 때 신라로 유입되는 인구가 신라의 왕조를 차지하는 김씨계 종족들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들이 가지고 온 문화가 바로 천손신화이고, 금관의 디자인이다. 이들 유목민들은 소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전투 기술과 정복 경험으로 고인돌 시대부터 정착해온 농민사회를 압도하고 통치계급으로 등장하였다.

한민족의 형성에 여러 종족이 관련하였지만 가야의 허씨족처럼 출신지와 이민 시기가 명기된 경우는 드물다. ‘가락국기’에 의하면 서기 48년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출신의 한 여인이 해로로 가락국에 도착한다. 이 여인이 김수로의 왕비가 되는 허황옥(許黃玉)이다. 아유타국은 갠지스 강에 있던 인도 전국시대의 도시국가이고 현대의 이름은 아요디아( Ayodhia)다. 이 여인의 일행은 20여 명이었고 5~6명이 가라국에 잔류한다.

그밖에도 중국식 지명이나 종족명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이민이 한반도 민족 형성 과정에 나타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민족은 절대로 단일민족일 수 없으며 단군도 유일한 조상일 수 없다는 증거는 너무도 많다.

세계화 시대에 단일민족설을 신봉하는 민족은 자칫 값싼 선민의식에 빠져 세계경영의 시대에서 낙오하기 쉽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김병모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고고학 학사. 英옥스퍼드대 고고학 박사. 한양대박물관장. 저서 ‘금관의 비밀’ 등 다수.
 
출판호수 2003년 10월호 | 입력날짜 2003.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