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문 時論)

 

     匹夫와 리더의 차이

 

 우리나라 역사상 세자인 아들을 뒤주속에서 죽게한 영조는 불행한 아버지이지만 위대한 리더임에 틀림없다.그가 왜 자신의 아들을 잔혹하게 죽였는가에 관하여 인간적인 비난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군주로서 영명한 리더의 반열에서 끌어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순간에도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공과 사를 분명하게 가리고 이를 실천했다는 점이다.사직의 이념적 정체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잔혹한 아버지가 되기를 주저치 않은 것이다.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함함한다고 한다.필부일수록 자신의 혈육에 목을 매고 연연한다.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동물적 본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동물적 보존본능이나 조폭적 結合유혹을 떨쳐 버릴 때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이 드러나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치명적 결함을 지닌 세자가 군주의 대권을 이어 받음으로 인하여 초래될 국가적 재앙을 고려하여 자신의 父性을 끊어내는 비정한 결단에서 우리는 추상같은 리더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

 어리석은 자들, 아니 필부들의 자식사랑이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자식에게 한푼이라도 더 상속시키기 위해 온갖 재주를 다 동원하는 자산가들이 있는가 하면, 가족과 지지자들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권력조차 왜곡시키는 부류들을 너무도 자주 접하게 되면서 우리는 리더에 대한 기대감을 하나씩 접어야 했다.

 가장 아끼던 충신의 목을 베고 돌아서서 눈물 흘리는 지도자의 모습을 '삼국지연의'는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읍참마속(泣斬馬謖)]

 자식사랑과 패거리관리에 부끄러움 없이 열중하는 리더에게서 모든 기대를 송두리채 접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너무도 까마득한 일들이다.

 디지털문명은 정보의 대중화를 이루어가고 있다.정보의 공유와 보편화는 모든 클라이언트의 수평적 평등을 요구한다. 어느 누구라도 네트웤을 통해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그것은 동시에 보통-평등의 사회실현에 바짝 다가서게 만든다.이제는 더이상 특별區를 용납하지 않는다.그러나 이와같은 정보공유화에 따른 차별철폐에도 불구하고 정보의 대중화라는 긍정적인 측면에 상관없이, 아니 그 이상으로 서버관리자의 특별한 리더십은 중요하고 크다.오늘날 대중사회의 몰개성화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자질이 그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식사랑과 의리등이 강조되는 미덕임에 틀림없다.

 친구라든지 조폭이라는 용어가 젊은이들 사이에 아름다운 꿈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를 충분히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사회가 현재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열등한 가치에 민족의 미래를 맡기고 있지 않은지 지극히 염려스럽다.

 "조폭"으로 대변되는 우정과 의리가 이 시대 최고의 가치인양 회자되고 있는 현실은 분명 뭔가 잘못가고 있다는 걱정을 낳기에 충분하다.왜냐하면 리더에게 있어서 우정이나 의리같은 원색적 생물본능은 고품위의 승화된 리더십에 비기면 분명 劣位에 속하기 때문이다.

 일찌기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부르짖으면서 정치를 특별한 자질을 지닌자가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말하자면 리더와 필부를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다.

 어느때부터 우리사회는 보통사람들의 시대라는 말로 리더에게까지 보통사람이기를 바라는 심리가 팽배하기 시작했다.더구나 최근에는 리더가 나보다 모자라는 필부라는데서 일종의 나르시즘을 느끼는 그야말로 병적현상으로까지 다가가고 있다.

 민주정치가 愚衆政治로 타락하는 것을 경계한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우리가 선택한 리더가 필부가 아닐거라고 믿으며,또 그러기를 기대한다.

 

(2003.  6.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