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독점 불가능 … 美 패권 100년도 못가"
     
   대담자 : 김영희 대기자

 


앨빈 토플러 박사는 『미래의 충격』『제3의 물결』『권력 이동』『새 문명의 창조』 같은 저서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래학자다. 그는 실리콘 밸리가 등장하기 몇십년 전에 퍼스널 컴퓨터·가상현실·전자네트워크 등에 관해 강연을 하고 글을 썼다. 그는 세계에서 최초로 인터넷을 사용한 7백명 중의 한 사람이다. 한국을 2년 만에 방문한 그를 신라호텔에서 만나 신보수파들이 장악한 미국의 세계전략 등을 들었다.


▶김영희=직설적으로 묻겠습니다. 신보수파(Neocon) 손에 들어간 부시 정부는 고대 로마 같은 아메리카 제국을 지향하고 있습니까.

▶토플러=미국을 21세기의 로마라고 묘사하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이 역사상 로마 이후 다른 제국들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아메리카 제국은 오늘의 현실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1백년·1백50년 전의 대영제국을 봅시다. 영국이 제국을 경영한 목적이 뭐였습니까. 세계의 유색인종을 계몽하고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도 목적의 하나였던 건 사실이죠. 그러나 그 바탕에 있는 건 경제였어요. 영국인들은 인도의 항구에 군함을 대기시켜 놓고 인도인들에게 목화를 싸게 팔라고 압박했어요. 싸게 산 인도산 목화를 맨체스터나 버밍엄으로 가져가 옷감을 만들어 다시 인도로 돌아가 이번에는 비싼 값으로 팔았습니다. 제국주의는 수지맞는 장사였죠. 그러나 목화로 옷감을 만드는 공장과 기술은 영국 땅을 떠나지 않았어요. 그때와 지금은 이 점이 달라요. 지금은 지식과 정보가 공장을 돌립니다. 아무도 지식과 정보를 장기간 독점할 수가 없어요. 지식은 직물공장 같이 맨체스터나 버밍엄에 붙들어 둘 수 없기 때문이죠.

▶김=달리 표현해 과거의 제국과 미국은 어디가 같고 어디가 다릅니까.

▶토플러=지금은 첨단무기의 독점이 불가능합니다. 대영제국은 기관총을 가졌는데 아프리카 식민지는 기관총을 갖지 못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인구 2천만명에 경제적으로 파산지경에 이른 북한이 핵무기로 미국과 중국 같은 대국을 휘두르고 있지 않습니까. 한두 나라가 가공할 무기를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제국의 판도도 로마제국의 전성기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글로벌합니다. 또 시간의 문제가 있어요. 우리는 로마제국에 관해서는 몇세기나 1천년 단위로 말하지만 미국은 건국된 지 2백년 좀 넘고 세계를 단독으로 지배하는 건 냉전 종식 이후 10년이 좀 넘어요. 역사 진행의 스피드는 또 어떻습니까.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나 순식간에 바뀝니다. 미국의 파워가 1천년 가겠습니까. 1백년도 못 갈 걸요. 로마와 미국의 이미지상의 차이는 이렇게 큽니다.

▶김=중국이나 유럽연합(EU)이 미국의 견제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있습니까.

▶토플러=가능한 일이죠. 나는 유럽보다는 중국에 걸겠어요.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표현을 빌리면 유럽은 늙었어요. 문화적으로 유럽은 기술을 두려워합니다. 유럽문화의 저변에는 기술발전에 대한 저항심리가 있어요. 유럽에도 뛰어난 과학자들과 정보기술 전문가들이 많지만 유럽인들의 기본적인 자세는 기술발달에 호의적인 게 아닙니다. 중국은 대조적이죠. 한국·중국·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기술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기술친화적입니다. 중국의 지도부 교체 이전의 지도자들을 봅시다. 가령 장쩌민 (江澤民)은 마르크스주의자로 성장했는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기술의 사회·경제·정치적인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랍들입니다. 그들은 기술개발을 중시합니다. 모스크바에서 공부를 했건 다른 데서 공부를 했건 중국의 지도자들 거의 전부가 엔지니어로 훈련을 받아 기술에 익숙하고 경제와 사회를 바꾸는 기술의 힘을 높이 평가합니다. 지난 50년 동안 컴퓨터 앞에서 졸기만 한 유럽 사람들과는 달라요.

▶김=중국의 MIT라는 칭화(淸華)대가 베이징(北京)대를 누르고 중국 최고 대학의 위치를 지키는 게 우연이 아니군요. 다시 미국의 신보수파로 돌아가겠습니다. 신보수파의 대표적 지식인의 한 사람인 로버트 케이건은 최근의 저서 『천국과 파워』에서 미국과 유럽은 이제 가치관을 공유하지도 않고, 심지어 같은 세계에 산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사랑과 미(美)를 상징하는 금성(Venus)에서 온 유럽인들은 국제법과 국제기구에 바탕을 둔 칸트의 영구평화에 안주하는 반면 군신(軍神)을 상징하는 화성(Mars)에서 온 미국은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홉스의 세계에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킨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토플러=케이건은 유럽인들의 그런 자세가 상대적인 무력감의 반영이라고 설명하고 있죠. 내 생각에는 미국과 유럽과 그 밖의 나라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반미 현상을 봅시다. 프랑스가 유엔에서 반미를 주도하고 반미는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미의 원인은 이라크나 중동과는 무관합니다. 반미의 원인은 미국이 새 기술, 새 생활방식, 새 문명을 창조하는 데 대한 세계의 반작용입니다. 미국은 의식적으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새 생활방식과 새 문명을 만들어냅니다. 경제의 기반을 새로 만들고, 육체적인 힘에 기반을 둔 경제를 정신과 두뇌의 힘에 기반을 둔 경제로 바꿉니다. 거기에 따라 사회제도와 조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가족관계가 바뀌어 과거의 생활방식은 붕괴의 운명을 맞습니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 사이에 새 문명의 급속한 확산을 환영하는 사람들과 거기에 저항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 변화에 유럽인들이 충격받고 당황하고 놀라는 거죠. 프랑스인들은 샹젤리제의 식당에서 세시간 즐기는 오찬을 포기하는 걸 두려워한다는 농담이 있는데 미국인들은 일을 많이 합니다. 새 문명이 등장해 낡은 제도에 도전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650년대·1750년대·1850년대의 산업혁명 때도 그랬고 20세기에도 그랬어요. 영국에서도 산업혁명 때 디스라엘리로 대표되는 지주계급들과 글랫스톤이 대표하는 상공업 계급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건 정치적인 갈등으로 발전했어요. 프랑스에서는 새 문명과 생활방식을 둘러싼 갈등이 가톨릭교회로부터 교육을 해방시키려는 운동으로 나타났었어요. 러시아에서는 1917년 레닌이 공산주의란 소비에트(노동자·농민·병사들의 평의회)와 전기가 하나로 뭉친 것이라고 말했어요. 그때 전기는 현대화와 공업화의 상징이었죠. 산업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정치·문화·생활방식·가족관계 전반에 걸친 문명의 충돌이 일어난 겁니다. 종교끼리 부닥치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김=미국 신보수파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은 아메리카 제국(Imperium)이라는 말을 쓰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부시 정부의 국내정치외 대외정책에 대한 신보수파의 영향력은 얼마나 큽니까.

▶토플러=그들은 미국인의 다수의견을 대표하지 않아요. 그들의 의견은 소수에 불과해요. 미국인들 대부분의 기본 성향은 고립주의적입니다. 우리끼리 충분히 잘 사는데 왜 남의 나라 일에 끼여드느냐는 생각이죠. 제국과 비제국, 다변주의와 일방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지역의 문제에 개입할 것인가, 개입하지 않을 것인가의 선택인데 신보수파의 견해에 동조하는 세력은 다수가 아닙니다. 신보수파는 아주 우수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고, 그들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요. 그러나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전략적인 문제고 비교적 소수의 미국인들의 주목을 받을 뿐입니다. 내가 듣기로는 지금 부시 대통령도 신보수파와의 관계를 재검토(Reevaluate)하고 있다고 해요. 이런 배경에서 신보수파가 미국의 외교정책을 장기간 장악하지 못할 겁니다.

▶김=부시 대통령에 대한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입김도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토플러=그들은 공화당의 중요한 지지기반이죠.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요. 닉슨 대통령 때 백악관 만찬에 간 일이 있는데 닉슨의 핵심 참모 한 사람이 기독교 보수파가 공화당에 주는 표는 전체의 4%밖에 안 되는데 그들이 내는 목소리는 30%나 된다고 농담하는 걸 들었어요. 부시 자신이 예사 기독교 신자가 아닙니다.

▶김=계몽사상의 바탕 위에 세운 미국에서, 그것도 인터넷 시대에 성경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미국은 하느님의 뜻으로 세운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이라크 같은 악의 나라를 응징하고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북한 같은 나라를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그렇게 많은 걸 이해할 수 없습니다.

▶토플러=그건 향락과 무절제한 생활에 젖었던 60년대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해요. 계몽주의에 대한 공격이기도 하고. 세속주의와 정교(政敎) 분리가 계몽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데 기독교 우파는 세속주의에 반대하고 기회만 있으면 학교 교실과 법정에 기독교의 상징물을 끌어들이려고 해요. 기독교 우파의 득세는 계몽주의 이후의 혼란이라고 봅니다.

▶김=조지 부시가 재선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토플러=투표일 일주일 전까지는 모릅니다. 이번에 영화배우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지사에 당선된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그는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반대하는 인공유산, 동성애, 제한된 총기단속에 찬성합니다. 그래서 공화당 선거전략가들은 지금 내년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다소 온건 노선으로 선회할 필요가 있는지 머리를 짜고 있을 겁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yh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