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相文 時評>

 

이라크 파병,모순의 논리?
어느 법학자의 역사인식을 우려하며(2003.5.4)

 

 철지난 이야기가 아닐런지?

 시사저널 2003. 4. 10 자 '시론'에서 내가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서울의 모 법과대학 학장이신 분의 견해에 도저히 동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한마디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그분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면서, 한편으로 한국 지성의 역사인식과 문명사적 편견에 심각한 오류를 보는듯하여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분이 한국 최고의 지성으로 인정받는 대학의 학장님이라는데서 나의 우려는 심각한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지성은 한국사회의 의사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의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리시스트라테>에서 여성들의 성파업이 드디어는 남성들의 전쟁욕망을 꺾어 평화가 이룩된다는 스토리를 소개하며, 2천4백여년이 지났어도 야만의 시대와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한다. 차이가 있다면 전쟁무기가 고도로 첨단화했다는 점에서 문명화한 야만의 시대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계신다.

더불어 미국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비판하지만 부시 역시 사탄을 만들어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모습과 다를바 없을 뿐만 아니라,이라크전쟁은 제국주의를 확장하기 위한 전쟁이며,(따라서) 미국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어서 파병불가피론에 대하여(노무현 대통령의 입장이기도 하다) 북한 핵문제 해결이라는 난제앞에서 미국의 비위를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약소국의 비애에서 비롯된 논리라고 하여 "숭미주의자"들과는 약간 다른 속내를 지녔다고 분석한다.

이와같은 전쟁불가피론은 미군으로부터 매일 폭격당하는 이라크에 파병해서 우리의 전쟁을 막겠다는 논리가 지닌 모순(?)을 설명할 방도가 없으며,이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대가로 우리만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이기적 발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단정한다.

본인은 적극적 파병론자이므로 이분의 논점에서 "숭미주의자"정도로 비쳐질지 의문이지만, 근본적으로 이라크전쟁을 보는 시각에서 오늘날 너무나 "이기적"으로 변해버린 지식인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으로 이글을 쓴다.

그분은 글의 우아함과 고전적 지식의 해박함을 빌어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인류의 오랜 염원을 설명하시지만, 본인은 그리스의 희극에 관한 지적 무지함으로 인하여 근대사회에서 명확하게 기록된 유럽지식인들의 평화운동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드리고자 한다. 스페인의 내전에 유럽의 지성들이 국적을 불문하고 참전하여 인간의 숭고한 가치를 회복하고자 피흘리며 죽어간 사연들을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있거라"에서 극적으로 묘사하여 우리의 심금을 울린 것이 바로 엊그제였다. 인간성을 파괴하는 파쇼독재 정권을 타도하는 것은 세기말 유럽 지성의 뜨거운 과제였고, 이를 위하여 국가가 설정한 국경은 의미가 없었다.

이처럼 멀리 바라볼 필요도 없다. 바로 우리들이 수년전에 처했던 참담한 상황을 되살려 보자.서슬이 퍼렇던 박정희 철권독재시대와 전두환 일당의 깡패통치에 우리의 젊은 지성들이 분신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행사하던 불행한 시기가 있었다.

꽃피어나던 교정에서 온몸을 불태우며 죽어간 열사들은 과연 무엇을 갈구했던가!

5월의 광주에서 무자비한 총검앞에 학살당한 생명들은 무엇을 지키고자 함이었던가!

그 시기에 우리는 강대국 미국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했는지 되돌아 보기로 하자.

소극적으로 독재정권의 탄생 및 강화에 동조한 미국의 죄악을 우리는 논하고 있다.

후세인의 철권 파쇼정권은 우리의 박정희나 전두환의 파쇼정권과도 다른 인간성 파괴의 사교집단이다.그들은 종교를 빙자하나 이슬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단지 파쇼체제 강화와 유지에 악용할 뿐이다. 잔혹한 파쇼 광신집단에 신음하며 죽어가는 더많은 이라크 인민들의 숨죽인 갈구를 세계의 지성들이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스페인 내전에 그처럼 열광적으로 참전하던 유럽의 지성들이 오늘날 더 참혹한 이라크 파쇼집단을 무너뜨리는 전쟁앞에 반전과 평화를 내세우는 진의가 무엇인지? 혹여 유럽의 지성들이 자국의 네션널리즘을 교묘하게 반전 평화라는 논리로 포장하여 세계에 수출하는데,한국의 거품 지성들이 이에 동조하는 형국이 아닌지 반성해 봐야 할 일이다.

프랑스혁명으로 무장한 시민군이 나폴레온의 지휘아래 자유의 전도사로 유럽대륙을 침략(?)하던 시기가 있었다. 독일의 지성들은 자국을 침략해 들어오는 나폴레온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하였다.절대주의 정권 아래서 숨죽여 신음하던 유럽의 지성들에게 프랑스 시민군의 침입은 자유의 멧시지에 다름 아니었다.

 인간의 자유와 이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유럽 지성들로 하여금 인권에 관한 문제는 국경과 시효가 없다는 국제법적 합의를 끌어내기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만약 우리나라 군대가 이라크전에 파병한다면 우리나라는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논할 자격이 없어진다고 염려한다.비슷한 우려의 목소리는 남북전쟁시 링컨에게도 똑같이 쏟아졌다.주로 남부의 보수 반동세력에서 만들어낸 소위 평화의 논리로서 말이다.그러나 흑인노예들의 참혹한 실태를 외면하고 일시적 평화를 추구함은 너무나 반인간적이고 반문명적임을 역사는 증언한다.

똑같은 논리와 상징의 조작이 오늘도 반전과 평화라는 미명하에 행하여지고 있다.지식인은 일반인의 오류를 거부해야할 의무가 있다.그들의 그릇돤 인식이 유행이고 대세임에 이에 편승하려 함이야말로 지식인의 유약함이며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전형이다.필자는 오히려 우리가 이라크 인민들의 참혹한 인권실태에 우리들 자신의 보신과 안녕을 위해 외면하고 넘어간다면,우리는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논할 자격조차 의심 받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휴머니즘과 문화,그리고 인권을 빌미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서구 지식인들이 더욱 참혹한 이라크 상황을 애써 외면한다면 이보다 더한 "논리의 모순"이 또 있을까?

우리가 지켜야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일시적인 비겁한 평화를 위해,생존을 구걸하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내던진 모습이 우리의 추구하는 바 가치는 아닐 것이다.더이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절하시키지는 말아야 겠다.불의앞에 비겁한 지성의 나약함을 이제는 그만 연출해도 되지 않겠는가!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켜나가겠다는 우리의 뜻을 분명히 해야할 때다.

 인간의 생명과 그 존엄성은 천하를 주고도 바꾸지 못한다.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제일 큰 책무이다.이를 외면하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폭력조직 내지는 사교집단에 불과하다.이라크 파병은 "논리의 모순"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의지의 표명일 뿐이다. 우리나라가 인간의 천부적 권리와 자유에 관하여 개명된 정책을 추구하고 있음을 내외에 과시한 것일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인류 보편의 가치이다. 이러한 가치를 외면하는 것 또한 중대한 죄악으로 기록 될 것이다.

 긴급구조의무라는 것이 있다.자신의 능력으로 능히 구조가 가능한 피해자를 수수방관하여 계속된 위난에 처하게 하는 자는 공동체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범죄로 단죄되어 마땅하다.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전평화 논리는 이웃집 "지존파" 범죄자들을 주거의 평화와 안녕이라는 논리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비슷하다는 어느 시민의 말은 너무도 적절한 비유이다.

 법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적이 무엇인가?법의 목적이 불의와의 적당한 타협을 말하는 것은 아닐진데, 우리의 젊은이들이 비겁한 반전과 평화논리에 병들어 가기를 원하는 것 또한 그분의 진심은 아닐 것이다.

자유와 정의는 지키려는 결연한 의지를 동반하지 못할때 언제든지 이기적 정치권력이나 사탄의 제물이 될 수 밖에 없다.자유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우리는 4.19혁명,그리고 박정희와 전두환 일당의 군사파쇼독재에 대한 피의 항쟁으로 전 과정을 체험하였다.

 이라크 참전은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파쇼독제체제에 신음조차 못하고 죽어가는 이라크 인민을 구해내는 가장 인간적인 평화운동에 다름 아니다.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려는 투쟁만큼 神意에 합치하는 것은 없다.이를 기피함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위반이다.

100 여년전 법철학자 예링(Jhering,1818~1892)은 경고하였다.
"정의의 살해보다 더 큰 중죄는 없다."



(2003. 5.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