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딴죽에 걸려 넘어진 부시


이스라엘 비판했다가 혼쭐…‘반 팔레스타인 정책’으로 원대복귀 확실


지난해 9월 이후 반 테러 전쟁을 수행하며 높은 인기를 유지해온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요즘 괴롭다. 자신의 지지 기반인 공화당 내부는 물론이고 친 이스라엘계 보수 우파 세력들이 최근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테러 소탕’을 명분으로 요르단 강 서안 지구 같은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에 투입한 병력을 즉각 철수하라고 부시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요구하자 보수 우파 세력은 집단 반기를 든 상태다.

이들 친 이스라엘계 보수 우파는 부시 대통령의 처사가 반 이스라엘 분위기에 휩싸인 유럽 온건파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불만을 토해내고 있다. 심지어 이들은 분쟁 해결을 위해 중동 순방에 나선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활동을 가리켜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기독교 우파의 대표적 인물인 게리 바우어는 “부시 대통령의 중동 발언 중 90%는 이스라엘 군대를 철수하라고 요구한 것 때문에 퇴색해버렸다”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또 톰 딜레이 공화당 원내총무는 “미국은 폭력과 증오를 생산하는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섬멸하는 데 여념이 없는 이스라엘을 지원해야 한다”라고 부시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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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바우어(위)는 대표적인 극우파 기독교 운동가이다. 그는 “미국이 이스라엘을 도와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 중진인 미치 맥코넬 상원의원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테러 조직으로 규정하는 한편 이 기구의 워싱턴 주재 사무소를 폐쇄하고 팔레스타인 고위 인사들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을 준비 중이다. 또 지난 4월10일 미국 의사당을 방문한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는 상원의원 20명으로부터 따뜻한 영접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공화당 내부의 조짐이 심상치 않자 부시는 최근 부랴부랴 공화당 지도부 19명과 만나 자신의 중동 정책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부시는 샤론의 PLO 섬멸에 개입하지 말라”

사실 부시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지금까지 친 이스라엘계 보수 단체들과 보수 언론의 주장을 고스란히 반영해 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극우파 보수 단체인 미국신세기계획(PNAC)이나 보수 정책 집단인 미국기업연구소(AEI), 보수 언론인 <월 스트리트 저널> <내셔널 리뷰> <위클리 스탠더드> <워싱턴 타임스> 들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성서와 관련지어 이스라엘에 대한 보호를 미국의 ‘도덕적 의무’라고 간주하는 기독교 우파 단체들도 친 이스라엘 세력이다.

이 가운데 부시의 이스라엘 비판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기를 들며 저항하고 있는 보수 우익 단체가 바로 미국신세기계획이다.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장인 윌리엄 크리스톨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이 단체는, 중동 정책은 물론 부시 행정부의 대외 정책 전반에 걸쳐 보수파의 논리와 주장을 대변해온 대표적인 극우 단체다. 이 단체는 크리스톨을 포함해 미국의 대표적 우익 인사 33명의 이름으로 4월3일 부시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 이스라엘 샤론 총리를 지지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이 서한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아라파트와 협상하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마치 오사마 빈 라덴과 협상을 하라는 것이나 똑같다”라며 아라파트와의 협상불가론을 강력히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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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베넷 전 교육장관(위)은 보수 우파의 친 이스라엘 정책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이 서한에 서명한 사람들은, 크리스톨 외에 윌리엄 베넷 전 교육장관, 안보정책센터(CSP) 소장인 프랭크 개프니, 국방장관 직속 국방자문위원회 의장인 리처드 펄, 보수파 칼럼니스트 대니얼 파이프스, 신보수파의 기수 노먼 포드호레츠, 전 중앙정보국장 제임스 울시 등이다. 이들은 9·11 테러 이후 각종 텔레비전 방송과 활자 매체를 통해 팔레스타인 세력의 테러 연계 가능성에 관한 공개 토론을 주도해 왔다.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1997년 6월 이 단체의 창립 발기문에 부시 대통령의 친동생이자 플로리다주지사인 젭 부시, 부통령인 딕 체니와 그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폴 월포위츠 부장관도 서명자로 등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친 이스라엘 정책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단체가 부시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을 보낸 4월3일 때마침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시리아·이란·이라크와 함께 테러 전쟁의 ‘목표’라고 지목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현재 이들 친 이스라엘계 보수 우파와 기독교 행동파들이 부시 대통령의 새 중동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며 끈질기게 주창하고 있는 사항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이들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일종의 테러 조직이므로 이스라엘은 이런 조직과 협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둘째, 부시 대통령은 설령 이스라엘 샤론 총리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섬멸한다 해도 이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셋째, 반 테러 전쟁은 이라크는 물론 이스라엘의 적들인 이란과 시리아, 그리고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분쇄하지 않고는 결코 종식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부시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같은 중동 우방국의 말을 듣고 샤론 총리의 목덜미를 죄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공동운명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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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한 파월 미국 국무장관(뒤)과 샤론 이스라엘 총리.

보수 우파의 친 이스라엘 입장과 관련해 일종의 이론적 지침을 제공하는 중심 인물은 따로 있다. 과거 레이건 행정부 때 교육장관을 지냈고 현재는 대표적 보수 단체인 헤리티지 재단에 적을 두고 있는 윌리엄 베넷이 그 주인공이다. 요즘도 보수적 가치들을 주창하기 위해 각종 보수 단체 강연장은 물론 NBC와 Fox 같은 텔레비전 방송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베넷은 공화당 보수 우파와 끈끈한 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보수 우파 조직인 ‘임파워 아메리카’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운명공동체라는 소신을 피력하는 친 이스라엘 열성파다.

물론 이번에 부시 대통령이 국내외 여론에 굴복해 파월 국무장관을 중동 특사로 파견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친 이스라엘 성향까지 바꾸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이는 공화당 딜레이 원내총무의 자문관인 조너선 바론이 <워싱턴 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새 중동 정책에도 불구하고 부시의 확고한 친 이스라엘적 세계관은 여전하다고 믿고 있다”라고 지적한 데서도 나타난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테러 사태 이후 전세계를 상대로 ‘우리 편인지 테러주의자들 편인지 선택하라’며 이분법적 외교 정책을 강요해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친 이스라엘계 보수 우파 세력들은 팔레스타인측이 행한 일련의 자살 폭탄 공격을 ‘테러 행위’라고 규정하고 부시를 압박해 왔다.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을 포함한 행정부 내 최고위 외교안보팀 인사 대부분이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행정부 안팎의 맹렬한 친 이스라엘 보수파들의 압력과 반발을 오래 견뎌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 · 정민호(자유 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