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예크와 케인즈

鄭雲燦 (서울大敎授 經濟學)

1. 머리말

비엔나의 유복한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예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 1899∼1992)는 비엔나대학을 졸업하고 비엔나대학, 런던대학, 시카고대학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경제학, 심리학, 법학, 정치학, 철학 등에 걸쳐 광범위한 학문세계를 이룩하 였으며, 저서만도 17여권, 편저 10여권, 팜플렛 20여권, 논문 140여편에 달하는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였으나 케인즈가 논리기계라고 묘사하였을 정도로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였다. 하이 예크의 매력은 그의 뛰어난 論理性에 있었다.

 한편 영국 케임브리지의 하아비路에서 태어난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 1883∼1946)는 명문 이튼고등학교를 거쳐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약관 28세인 1911년부터 34년 동안 영국경제학회 지인 Economic Journal의 편집책임자를 지낸 탁월한 이론가였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은 언제나 現實問題에 있었다. 케인즈는 케임브리지대학의 강사를 지냈지만 교수로 재직한 적은 없었으며 {一般理論}(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 1936)을 향하여 일관되게 사고하였다는 평가와는 달리 실천적 경 제학자답게 상당히 빠른 변신을 보였다. 論理와 現實이라는 하이예크와 케인즈의 학문태도 이외에도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이한 자본주의관과 정 책관을 지니고 있었다.

 하이예크는 신자유주의의 이념을 확립하고 자유방임원칙에 따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 서 통화가치를 안정시키고 시장질서를 유지할 것을 강조한 반면, 케인즈는 자유방임의 곤란함을 지적하고 자본 주의의 결함에 대하여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두 사람은 모두 당시의 경제이론 이 현실경제가 貨幣經濟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실물부문의 분석에만 치중하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화폐부문과 실물부문을 통합한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방법이나 내용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30년대 전반기(1931∼1936) 두 사람은 20세기의 명승부라 할 수 있는 멋진 論爭을 벌였다. 힉스는 이 논 쟁의 시기를 '드라마'로{{ ) J.R. Hicks, "The Hayek Story", Critical Essays in Monetary Theory, Oxford, p.203, 1967. }}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는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판되면서 막을 내렸다. 대공황이 수년 동안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저 기다리자는 하이예크의 정책처방은 부적절했던 것이다. 만성적인 경기침체와 대량실업의 위기에 처했던 시기에 완전고용균형을 전제로 自由放任과 長期的 政策處方을 중시하는 이론은 불완전고용균형에 근거하여 積極的인 政府介入과 보다 短期的인 政策處方을 강조하는 이론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자본주의사회의 번영이 둔화되고 스테그플레이션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미시적 분석과 자원배분문제를 강조하는 하이예크이론은 다시금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하이예크와 케인즈, 두 사람 중 과연 누가 옳았고 승리한 것일까? 어느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하여 자신있는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각자의 價値觀과 時代狀況에 따라 두 사람의 입장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 나 양자의 조화를 꾀할 수 있을 뿐이리라. 이 글의 목적은 하이예크와 케인즈의 자본주의관을 살펴보고, 두 사람의 정책관을 비교한 후 하이예크와 케 인즈의 화폐수량설 비판과 통화정책의 제안내용을 살펴보는데 있다.

II. 資本主義觀

 1. 하이예크의 資本主義觀

 하이예크는 新自由主義에 입각하여 자유경쟁원리가 법의 지배 아래 적절히 보장된다면 자원배분이 效率的으 로 이루어지고 國富가 증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소득분배문제나 경기변동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복지국가와 혼합경제의 이념은 단기적으로는 얼마간의 성과를 보일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원래의 의도와 달리 기득권층 의 이익만을 보장해 주거나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크나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고 역설하였다. 그에 따르면 社會秩序라는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사회는 다른 사회와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근대이전의 사회에서는 신의 명령이나 지배자의 의지에 따라 사회질서가 형성되었고, 사회주의사회에서는 중앙계획당국의 지시에 따라 사회질서가 형성된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분업이 급속히 진전되고 지식이 광범위하게 분 산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행위의 결과로서 사회질서가 나타난다. 이러한 사회질서는 특정목적에 부합된 '具體 的이고 設定된 秩序'가 아니라, 특정목적에 결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공동목적도 존재하지 않 는 '抽象的이고 自發的인 秩序'이다. 하이예크가 인식한 자본주의사회는 포퍼(K. Popper)가 말하는 '抽象的 社 會'이다. 이러한 추상적 사회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필요를 위하여 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공익를 위해서든 사익을 위해서든 자원을 사용하고자 할 때 시장가 격이라는 비인격적인 신호에 따라야만 한다.{{) 박우희, {F.A. 하이예크}, 유풍출판사, pp.141-156, 1982. }}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바로 이 추상적이고 자발적인 사회 질서를 통해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높일 수 있으며, 그에 따라 풍요로운 물질적 부를 향유할 수 있다. 하이예크는 근대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인 노동의 분업이라는 현상을 독특하게 '知識의 分業'(division of knowledge)이란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영위하려면 많은 지식이 필요한데,{{) 하이예크가 말하는 '지식'(knowledge)이라는 것은 '정보'(information)와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

  그러한 지식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조직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개인과 조직에 널리 분 산되어 있다. 더우기 그러한 지식은 결코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서는 왈라스(L. Walras)의 경매인을 통한 완전정보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경제에 서 빈번히 발생하는 不均衡過程을 적절히 설명하지 못한다. 하이예크 역시 이 점을 비판하고, 완전정보와 여건 불변의 가정을 버리고 지식의 분업이란 개념을 통하여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실을 분석하였다. 그에 의하면 개 인의 경제활동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는 시간과 공간에 의해 한정되고 변화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식 (예를 들어, 각자의 능력, 자질, 주변여건 등)이다.

 이러한 지식은 개인이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단편적 인 것이지만 개인의 경제활동을 미시적으로는 보장할 수 있다. 문제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에 기초한 개 인의 경제활동을 거시적 차원에서 調整하고 하나의 질서로서 형성시켜 주는 힘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이 문제의 해답을 競爭에서 찾고 있다. 하이예크는 왈라스 이후의 완전경쟁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경제주체가 완전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완전 경쟁모형은 경쟁이 전혀 의미가 없는, 어떤 의미에서는 경쟁이 완료된 상태를 묘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경쟁이란 개인이 불완전하게 지니고 있는 지식 내지는 정보를,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의 변화에 대하여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파악한다. 어떤 재화가 희소하고 그 재화의 가치가 얼마냐는 것은 사전에 주어진 것 이 아니라 경쟁을 통해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본다. 개인의 지식이 불완전한 경우 경쟁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불완전해질수록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개인이 지니고 있는 지식은 단편적이고 불완 전하다. 경쟁은 개인이 불완전한 지식을 각자의 목적에 맞게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다. 이것이 바로 하이예크가 말하는 '發見的 手段으로서의 競爭'의 의미이다.{{) 박우희, {F.A. 하이예크}, 유풍출판사, p.160, 1982. }}

  광고, 선전 등과 같은 것을 통해서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확실한 지식은 무엇일까? 하이예크는 그것은 바로 價格이라고 한다. 가격은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지식의 총합이다. 분업이 발달함에 따라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사회전체에 널리 분산되고, 개인은 그 중 일부의 단편적인 지식만을 보유한다. 그런데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해 경쟁을 하고 부족한 지식을 발견하게 된다. 하이예크에 따르면 시장가격의 기능은 개인이 필요로 하는 지식을 수집해서 전달하고 수많은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것이다. 가격을 통해 개인은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면 좋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자원을 최소의 비용으로 이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터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은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 은 지식과 정보를 응축한 형태로 표시하고 있는 신호이다. 개인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가격이라는 비인격적인 신호에 따라 자신의 경제활동을 조정해 나간다. 다시 말해서, 시장가격은 일종의 '情報傳達裝置'라는 것이다.

 하이예크는 시장의 기능에 대하여 또 다른 측면을 지적하고 있다. 시장은 개인의 다양한 목적을 자의적인 통제없이 동시에 실현시켜 준다. 분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는 사회내에 수없이 많은 목적이 공존한 다. 그러나 지식은 사회에 널리 분산되어 있고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에 집중될 수 없기 ㄸ문에 여러 다양 한 목적의 상대적 중요성을 파악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러한 목적들은 바로 시장에서 경쟁과 가격 에 의하여 조정된다. 하이예크는 자의적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시장메커니즘에 의하여 자발적인 경제질 서가 형성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는 자의적 강제력을 통한 사회보다 훨씬 더 바 람직한 성과를 낳는다.

 따라서 그는 '中央執權化된 經濟計劃' 보다는 '分權化된 市場經濟'가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체제임을 역설한다. 분배문제에서 하이예크는 스미드(A. Smith)처럼 인간의 경제생활은 개인의 技(skill)와 運(chance)에 의해 결정되는 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게임이 공정하게 진행된다면 그 결과는 당연히 각자의 技와 運에 따 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그 결과가 옳다니 옳지 않다니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의 평등이 아니 라 기회의 평등 또는 출발의 평등이다. 하이예크는 시장메커니즘의 결과에 대한 분배적 정의란 이름으로 수정 을 가한다면 그것은 약한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기는 커녕, 강력한 이익집단에 이용되어 오히려 기득권층 만 보호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F.A. Hayek, Law, Legistration and Liberty, Vol. 2, Chicago, p.38, 1976. }}

  다음은 하이예크의 경기변동론을 살펴보기로 하자.{{) F.A. Hayek, Prices and Production, London, 1935. __________, The Pure Theory of Capital, London, 1941. }}

  당시 오스트리아학파의 경제학자들이 실물부문의 분석 에만 치중했던 것과는 달리 하이예크는 현실경제가 화폐경제임을 강조하고 실물부문과 화폐부문을 통합한 분석 을 시도하였다. 이 점에서는 케인즈와 입장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하이예크가 이론을 전개할 당시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는 영국과 비교해 볼 때 후진국이었고 축적된 자본이 부족했다. 따라서 경제성장을 위한 자본축적이 급선무였으며, 중앙은행의 신용창조 같은 적극적인 방법을 통한 투자재원의 확보가 불가피하였다. 자연히 통화량의 증가에 따른 경제내 생산구조에 큰 변화가 발생하였으며, 하이예크는 그러한 과정에서 파급되는 경기변동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는 신용인플레이션으로 생산력을 확대시 켜야만 하는 경제를 분석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통화량과 생산구조의 관계에서 경기변동의 원인을 찾고 있다.

그는 뵘 바베르크(E. B hm-Bawerk)의 '迂廻生産過程'의 개념에 미제스(R. Mises)의 화폐이론을 가미하여, 신 용창조가 생산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독특한 경기변동이론을 제시하게 되었다. 은행의 신용창조에 의하여 통화량이 증가하면 自發的인 貯蓄(voluntary savings)이 증가했을 때와 마찬가지 로 이자율이 하락한다. 물론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시장가격으로서의 이자율의 하락은 생산구조의 확대, 즉 우 회도의 증가라는 실물부문의 변동을 낳는다. 즉 투자수요가 소비수요에 비해 상대적으로 확대되면서 생산구조 가 확대되고 고용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때 통화량의 증가는 전체 통화량 중에서 소비자들이 자유로이 쓸 수 있는 통화량의 감소와 아울러 실질적인 소비지출의 감소를 낳게 된다.

이것은 소비자들이 스스로 저축을 늘리 고 소비를 줄이는 것과 결과적으로는 동일하지만 통화량의 증가에 따라 강제된 절약이라는 의미에서 '强制貯 蓄'(forced savings)이라 불렀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단기적이라는 것이 하이예크의 주장이다. 생산구조가 확대되면서 고용이 늘어나고 임 금으로 화폐가 지급되면 소비수요가 다시 늘어나게 된다. 이에 따라 소비재산업의 가격마진이 증가하면서 자본 재산업에 투입된 생산요소가 다시 소비재산업으로 유입된다. 이때 인위적으로 확대된 생산구조가 유지되려면 신용창조를 통한 통화공급이 누진적으로 증가하여야 한다.

그러나 신용을 누진적으로 팽창시킨다는 것은 은행 은 물론이고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신용창조를 통한 통화공급은 어느 수준에서 멈추게 되고, 그에 따라 생산구조의 축소, 즉 우회도의 감소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스테 그플레이션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하이예크의 설명이다. 자본주의경제의 생산과정이 信用創造에 의하여 확대되었다가 다시 축소되는 과정에서 자본설비의 유휴화와 실업이 나타난다는 하이예크의 설명은 소비재산업과 자본재산업간의 화폐수요비율의 변화와 상대가격변화에 따 른 요소재배분을 강조하는 독특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이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신용창조를 통하여 통화량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경제는 호황에서 불황으로 전환하게 된 다. 이때 소비수요의 증가에 의한 가격상승이 임금인상 보다 급격하기 때문에 자본을 노동으로 대체하려는 '리 카도效果'(Ricardo effect)가{{) 슘페터(J.A. Schumpeter)는 이 효과를 '하이예크효과'라고 하였지만, 하이에크는 이 효과의 창시자는 리카도(D. Ricardo) 임을 지적하고 '리카도효과'라고 재명명하였다. }} 나타나서 결국 생산구조의 축소를 촉발하게 된다. 이와 같은 하이예크의 주장 은 소비수요의 증가가 가속도원리를 통하여 투자수요를 자극한다는 통상의 논의와는 정면에서 배치된다. 하이 예크 역시 가속도원리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리카도효과를 통하여 자본과 노동의 비율이 점차 자본절약 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비수요의 증가에 따른 투자수요의 증가율은 감소하다가 결국은 절대수준마저 감소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신용창조에 의한 통화량의 증가 때문에 투자수요가 인위적으로 확대되고, 소비수요가 처음에는 억제된 상태 로 있다가 나중에 증가하면서 불황을 야기한다. 따라서 하이예크는 유효수요를 증가시켜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인위적으로 확대된 투자수요가 진정되고 균형을 회복하는 조정과정에서 소비 수요가 확대되면서 불황이 나타나므로 바람직한 정책은 불황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 끝으로 한가지 특기할 점은 하이예크가 강조한 자발적인 경제질서는 어떤 제약도 없는 질서가 아니라, 일반 적 질서로서의 法 支配下에서 維持되는 秩序라는 점이다. 하이예크는 법의 지배에 의한 정부역할과 경제정책을 강조한다.{{) F.A. Hayek, The Constituion of Liberty, London and Chicago, 1960. }}

 시장메커니즘이 원활히 기능하도록 일반적인 테두리를 설정하고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명백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세기 이후 정부정책은 남용의 역사였으며, 법적으로도 그러한 남용의 여지가 확대되어 왔음을 지적한다. 그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정부만이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의 제공, 예를 들어 치안과 국방, 법률제정 및 개정, 공공사업, 통화제도, 정보공개, 환경개선, 기술개발 등을 들고 있다. 그 리고 정부가 해서는 안될 일은 특정목적을 위한 서비스의 제공, 특히 오늘날 사회보장정책이란 미명하에 이루 어지는 대부분이 이에 속한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것들이 대부분 정치적 편의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의 지배를 위태롭게 한다고 보았다.

  2. 케인즈의 資本主義觀

 케인즈는 슘페터(J.A. Schumpeter)가 지적한 바와 같이 자유방임하의 자본주의는 결국 침체하고 만다는 비 젼을 가진 沈滯論者이다.{{) J.A. Schumpeter, "Keynes, the Economist", The New Economics : Keynes' Influence on Theory and Public Policy (S.E. Harris), London, p.7, 1947. }}

 자본주의사회는 불완전고용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에게 경제적 불안과 큰 고통을 주 며, 소득분배와 사회정의에 있어서도 많은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는 불완전고용이 있다고 해서 자본주 의가 곧 붕괴될 만큼 불안정한 것은 아니며, 또한 소득분배와 사회정의의 측면에서도 자본주위가 우리의 이상 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지라도 다른 경제체제에 비해서는 그래도 참을만하다고 믿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사 회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는 가장 유효한 체제임을 확신하였다.

케인즈 이전의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國富論}(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 1776)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하여 일종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무한히 많은 가계와 기업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개인의 이익은 물론이고 사회전체로 도 최선의 상태가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였다. 전지의 개인이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그것이 자비로운 신의 전능한 손에 의하여 조절되는 경제구조에서는 과잉생산이나 실업이 존재할 수 없다. 생산된 상품은 세이의 법칙에 따 라 그 만큼의 수요를 창출하므로 초과공급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고전학파 경제학자들도 부분적이고 일시적 인 재고축적이나 실업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현상은 일시적일 뿐이며 가격과 임금의 신축적인 움직임을 통하여 곧 해소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고전학파의 낙관적인 경제관은 합리적인 경제인에 대한 신뢰와 경제의 내재적인 自己調整能力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것이었다.

케인즈는 고전학파의 이러한 낙관주의적 믿음이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믿음에 근거한 낙관론이 현실성이 없는 경제이론을 낳았다고 주장하였다. 케인즈가 활동했던 1920년대와 30년대는 자본주의가 장기적인 실업을 겪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임금인하의 공허한 정책처방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전지의 합리적인 개인을 가정했지만, 케인즈는 미래는 물론이고 과거도 부분적 으로 밖에는 알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개인은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각자의 기대를 형성하여 행동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이 모여서 복잡한 경제현상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자본주의사회는 필연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를 내포하게 된다는 것이다. 케인즈는 현실문제를 떠나서는 이론을 펴지 않는 정치경제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영국을 떠나서는 경제이론 과 정책권고를 전개한 적이 없는 철저한 애국주의자였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세계적인 시야를 갖춘 순수한 학 자라고 보기 어려우며, 영국인 특유의 섬나라적 편협함과 독선을 보이기도 하였다.{{) 조순, {J.M. 케인즈}, 유풍출판사, 1982. }}

1차대전이 끝난 이후 영 국경제의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경기가 침체되고 투자는 저조하여 물가와 임금은 상승일로에 있었다. 비 단 경제 뿐만 아니라 사회혼란의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었다. 이러한 속에서 케인즈는 자유방임하의 자본주의는 결국 장기침체의 길을 걷게 된다는 확고한 견해를 갖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영국경제를 자본주의체제의 테두 리내에서 구출하여 부강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케인즈의 주된 관심사였다. {일반이론}을 통해서 케인즈가 제시한 이론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순, {J.M. 케인즈}, 유풍출판사, 1982. }}

우선 국민경제내에서 기술, 노동 량, 생산설비, 경쟁의 정도, 소비자들의 기호와 관습, 노동의욕, 조직의 관리 및 구조, 소득분배 등은 주어져 있다. 그리고 모형내의 독립변수로는 소비성향, 투자의 한계효율, 유동성선호, 통화량이 있고, 고용량과 소득 수준은 종속변수가 된다. 그는 독립변수 중에서 앞의 세가지를 '3大 基本心理法則'이라 하고, 이 심리적 요소 들과 통화량의 상호작용에 의해 소득수준과 고용량이 결정되는 有效需要理論을 제시하였다. 소비는 소득수준 이외에도 소비성향에 의존한다 그리고 투자는 기업가의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 하는 투자의 한계효율과, 주어진 통화량에서 개인의 화폐수요를 반영하는 유동성선호에 의하여 결정될 이자율 에 의하여 좌우된다. 유효수요는 소비와 투자의 합이며, 투자와 저축이 일치하는 수준에서 소득수준이 결정된 다.

케인즈는 불확실성에 처한 경제주체들의 심리적인 요인이 고용량을 좌우하므로, 자유방임하의 자본주의사 회는 반드시 완전고용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불완전고용이 보다 일반 적인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더우기 자본주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의 소비성향이 감소하고 저축성향이 높아져서 소비가 정체되 는 반면, 투자의 한계효율은 저하되는 경향이 있고 유동성선호는 증가하여 이자율이 높게 결정되어 투자가 감 소하게 된다. 게다가 중앙은행의 정책담당자들은 식견이 부족하고 보수적이어서 통화공급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총수요가 완전고용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 결과 대량실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케인즈의 견해 이다.

이와같은 사실 때문에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침체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막고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 해서는 고전학파의 자유방임은 포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게만 투자 를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투자의 상당부분을 社會化 내지는 公有化하여야 한다. 그리 고 유효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비록 생산적이지 못한 투자라도 행해져야 한다. 케인즈가 제안한 정책적 처 방은 정부가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섬세한 조정을 통하여 경기변동을 축소 내지 방지하는 것이었으며, 장기적 으로는 정부지출의 확대와 저이자율의 유지를 통한 管理通貨制度였다.

물론 그는 단기적으로는 통화정책을 통 한 간접적인 유효수요창출보다는 재정지출을 강화하여 직접적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 다. 케인즈는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만 다른 체제 보다는 훌륭한 체제임에 주 목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는 자본주의가 장기적으로 침체의 길을 밟는다는 케인즈 관찰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 다. 그의 관찰은 확실히 영국경제를 자본주의의 전형으로 파악한 데서 온 지나친 비관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 다. 그러나 케인즈가 제시한 자본주의사회의 침체요인이 그 이론적 근거가 미약하다고 해서 자본주의가 침체하 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케인즈가 제시한 요인 이외의 원인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침체할 수 있다. 여 기서 강조되어야 할 점은 자본주의가 침체한다는 케인즈의 비젼이 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 니라 전후 자본주의의 번영은 군비경쟁에 의한 유효수요의 창출에 크게 의존한 것이 사실이다. 케인즈는 유효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땅을 팠다가 다시 메우는 것과 같은 쓸데없는 작업이라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 날 세계는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탈냉전시대를 맞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는 무엇이 유효수요를 창출해 줄 것인 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케인즈는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에서 그의 社會哲學과 價値觀에 관하여 몇가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 는 우선 소득분배는 개인의 경제활동의 유인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평등한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정책처방은 평등한 소득분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소득분배가 평등해지면 소비성향이 증가하고 그것은 더 높은 소득수준을 통하여 소득증가와 부의 축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흔히 '절약의 역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

  한편 그는 높은 이자율을 유지하는 정책이 금리생활자와 같은 不勞所得者를 낳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것이야말로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못마땅한 점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정치적으로도 금리생활자가 많은 보수 당을 혐오하였다. 고이자율은 비단 투자를 저해할 뿐 아니라, 불로소득을 조장한다는 점을 그는 몹시 싫어하였 다.

마치 토지소유자가 지대를 얻는 이유가 토지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소유자가 이자를 얻는 이유는 자본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지의 공급량이 제한되어 있는 데에는 근본 적인 이유가 있지만, 자본의 양이 부족하다는 데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케인즈는 그가 제창하는 경제정책 (저이자율로 투자를 증가시키는 정책)이 채택된다면 투자의 한계효율을 하락시켜서 자본소유자의 불로소득을 없애고, 마침내 이들을 安樂死로 유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케인즈는 자신의 사회철학이 온건한 保守主義的 性格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유방임의 포기를 극력 주장한 그는 유효수요의 증가와 완전고용의 유지를 위하여 투자의 사회화 내지 공유화를 주장하였다. 그의 권 고가 채택될 경우 민간의 역할에는 무엇이 남는가? 그는 {일반이론}의 말미에서 후세의 학자들에게 많은 오해 를 자아내고,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고전학파이론에 대한 비판은 그 이론에 어떤 논리적인 하자가 있다는 데 있기 보다는, 그 암묵적인 가설이 거의 또는 절대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그 이론이 현실세계의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중앙집권적인 통제가 가급적 가능한 정도까지 완전고용수준과 총 통화량이 부합될 수 있게 하는데 성공한다면 고전학파이론은 이때부터 다시 제자리를 회복한다.

만일 우리가 총생산량을 주어진 것으로, 즉 고전학파사고의 테두리 밖에 있는 힘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무엇을 생산하는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어떻게 생산요소를 배합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최종생산 물의 가치를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사익이라 보는 개인의 사익이 결정하는 것으로 생 각하는 고전학파의 분석방법에 대하여 아무런 반론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 또 만약 우리가 절약의 문제를 어떤 방법으로든 무난히 해결했다면, 완전경쟁하에서나 불완전경쟁하에서나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이 서로 잘 조화가 된다는 현대 고전학파에 반론을 제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 라서 소비성향과 투자유인 사이에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중앙통제를 가할 필요성을 빼놓고는 경제생활을 전보 다 더 많이 사회화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 점을 구체적으로 예시한다면 기존제도가 생산에 이용되고 있는 생산요소를 크게 잘못 쓰고 있다고 생각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장래에 대한 예측이 빗나갈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사결정을 중앙집권화함으로써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하고 싶은, 또 일할 능력이 있는 천만 가운데서 9백만이 고용되어 있다고 해서 그 9백만의 노동이 잘못 쓰이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현재의 제도에 대한 불만은 이들 9백만 노동자 가 다른 일에 고용되어야 한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백만명에 대한 일자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데 있 는 것이다. 기존제도가 깨어지고 만 것은 실제 고용의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규모가 너무 적다는 데 있 는 것이다."{{) J.M. Keynes,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pp.378-379, 1936. }}

이와같이 케인즈는 자신이 자유방임을 기본철학으로 하는 고전학파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였 다. 그는 철저한 자유주의자요, 개인주의자요, 그리고 주지주의자였다. 국가가 개인의 경제활동에 간섭하는 것 은 오직 失業問題를 해결하기 위하여 유효수요를 늘리는 데 있으며, 그밖의 영역에서는 자유와 효율을 침해하 면서 국가의 역할을 증대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전제주의국가들은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유와 효 율의 상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3. 國家의 經濟的 役割, 그리고 長期와 短期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스미드의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입각하여 자유방임주의의 원칙을 확립하 였다. 이 원칙에 의하면 국가는 가급적 국민의 경제활동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국방, 치안 등 최소한의 공공수 요를 충족시키는데 그쳐야 한다.

그러나 대공황을 계기로 등장한 케인즈경제학은 정부역할에 대한 기존관념을 바꾸어 놓았다. 실업을 해소하고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 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섬세한 조정을 통한 총수요관리정책이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와서 전세계적으로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스테그플레이션이 엄습하면서 케인즈경제학 도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때 나타난 것이 바로 통화주의와 공급측경제학, 그리고 합리적기대이론이다. 이러한 일련의 경제이론은 고전학파의 사고를 계승한 것이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서로 상충되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 나,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 서있다.

이들은 시장메커니즘의 자기조정능력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가급적 정부개입을 줄이고 작은 정부를 선호하고 있다. 하이예크도 그의 몇몇 측면을 빼면 이들과 다 름 없는 新自由主義者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가의 경제적 역할에 대한 자유주의와 개입주의라는 두 갈래의 흐름은 시대상황에 따 라 부침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의 견해가 옳고 다른 쪽의 견해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양자의 입장 차이는 본질적으로 각자의 世界觀과 人間觀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은 완전정보를 보유한 합리적 개인을 가정하고 논의를 전개했지만, 하이예크와 케인즈 는 모두 현실의 경제주체들은 불완전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며 그것에 기초하여 미래에 대한 기대를 형 성하고 경제활동을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하이예크와 케인즈는 시장메커니즘의 巨視的 次元의 調整 (coordination) 여부에 관한 견해에서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하이예크는 시장메커니즘은 불완전한 정보에 기초한 개인의 경제활동을 성공적으로 조정 하여 거시적 차원의 경제질서를 낳는다고 주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은 이러한 조정에 필 요한 완전정보를 획득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메커니즘이 아니고서는 그러한 조정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 고 자본주의사회의 결함을 보완한다는 미명아래 이루어지는 자의적인 정부개입은 필연적으로 全體主義的인 政 治體制를 낳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나치의 독일과 파시스트의 이탈리아가 그 대표적인 예 이다. 따라서 복지국가와 혼합경제라는 이념아래 추진되어 온 정부개입의 확대는 관료주의의 비대화, 인플레이 션, 높은 세금부담이란 악영향만을 낳을 뿐이며,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전체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F.A. Hayek, The Road to Serfdom, London and Chicago, 1944. }} 그러나 케인즈는 개인의 심리적 요소에 의존하는 개별적인 경제활동을 시장메커니즘이 성공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러한 조정이 붕괴되는 것이 보다 일반적이라고 파 악하였다.

따라서 건전한 의식과 경제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춘 엘리트들이 제시하는 정책권고에 따라 정부 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자본주의사회의 결함을 보완해야 한다고 보았다. 시장메커니즘의 거시적 차원 의 조정능력에 대한 신념의 여부가 하이예크로 하여금 자유주의를, 그리고 케인즈로 하여금 개입주의를 선택하 도록 한 것이다. 하이예크는 실업이란 현상을 자유로운 시장과 통화공급의 기반 위에서 형성된 상대가격체계와 임금의 균형 상태가 파괴되었을 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자본주의의 좌절이나 시장경제의 파탄이 아니라고 하였다. 문제는 실업을 통화량의 증가라는 인플레이션정책을 통하여 해결하려는 단기적인 정책관이라 고 한다.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계속 가속화시켜 나가야만 하며,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 시장경 제질서는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정책은 당초의 생각과는 반대로 대량실업을 낳는다는 것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다. 인플레이션이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가져올 뿐이라는 생각은 허위에 지나지 않으 며,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해악은 바로 대량실업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케인즈가 제시한 경제정책에 대한 하 이예크의 비판의 요점은 총수요관리정책이 보통 단기적으로는 고용을 확대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가격과 임 금의 균형상태를 파괴하여 자원과 노동의 배분을 왜곡하고 오히려 더 많은 실업을 야기할 뿐이라는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정치적 목적이 반영된 단기적인 총수요관리정책을 자제하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通貨價値의 安定과 市場메커니즘의 保護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반면에 케인즈는 빅토리아시대의 건전한 그러나 다분히 독선적인 엘리트意識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 가 건전하고 경제가 발전하려면 그 방향이 자신과 같은 지성적인 귀족철학자들에 의하여 잡혀나가야 한다고 생 각하였다. 엘리트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사심없는 정책구상을 해야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믿었 다. 뿐만 아니라 케인즈 자신은 이 '하아비路의 價値觀'을 실천에 옮길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지식을 지녔다 고 믿었다. 그는 모든 형태의 사회악에 대하여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확신하고 세심한 주의와 노력으 로 빈곤이나 실업에 대한 대첵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케인즈는 자유방임적인 태도를 증오하고 계획과 제 도적 장치를 통하여 경제문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할 것을 역설하였다. 그는 실업문제에 대하여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통한 섬세한 조정을 거쳐, 마치 치과의사가 치아에 대하여 처방을 내리듯 항상 적절한 처방을 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전통적인 균형재정원칙을 거부하고 재량적 경제정책을 통한 인플레이션과 실업 의 회피를 제안한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단기를 떠난 장기라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30년대 이후 케인즈경제학이 전세계를 풍미하면서 케인즈의 신념에 기초한 경제정책이 추진되어 왔고, 자본 주의세계는 상당히 오랫동안 번영을 누려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그의 믿음은 지나친 것이었음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의 섬세한 조정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조잡한 정책수단에 불과했고, 70년대 이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었다. 이에 따라 최근에 와서는 하 이예크의 주장이 보다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Ⅲ. 貨幣數量說 批判

1. 貨幣數量說

 보댕(J. Bodin)이 16세기에 화폐수량설을 제시한 이후, 화폐수량설은 화폐금융이론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 하고 있었다.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출판되면서 화폐수량설은 한동안 낡고 케케묵은 사고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만(M. Friedman)에 의해 그것은 신화폐수량설이라는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그 주장의 단순함과 직관적 호소력 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다. 이처럼 오래된 역사와 강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화폐수량설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재화의 총량이 일정할 때 通貨量은 物價水準과 양의 상관관계가 있 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론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화폐수량설은 물가수준의 변동요인을 통화량 의 총량적 변화에서 찾는 이론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어떤 정형화된 이론체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통화량 과 물가수준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법을 의미하는 것이다.{{) A.W. Marget, The Theory of Prices, Vol. 1, Prentice-Hall, 1938. }}

통화량이 외생적으로 변화한다면 국민경제의 총지출도 통화량의 변화와 동일한 비율로 변화하게 되고 총지출의 변화에 비례하여 물가수준이 변 화한다. 따라서 통화량의 변화는 동일한 비율만큼 물가수준의 변동을 낳고, 나아가 이러한 인과관계의 방향은 오직 통화량에서 물가수준으로만 작용한다는 것이 화폐수량설의 일관된 주장이다. 화폐수량설의 기본명제에 의하면 재화가격의 절대수준은 통화량에 의존하지만, 그 상대가격체계는 통화량의 많고 적음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통화량의 변화가 상대가격체계에 영향을 준다면 재화의 수요와 공급이 변하게 되고 그에 따라 자원이 재배분된다.

그러므로 자의적인 통화량의 변동은 시장가격기구를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할 수 있다. 산업자본주의 초기에 이데올로기로서의 경제이론은 중상주의적인 규제를 철폐 하고 경제활동을 자유롭게 방임할 때 자원이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생산력과 국부가 증진된다는 자유주의적 경 제사상으로 변모하였다. 화폐수량설은 이러한 자유주의 사상에 잘 부합되었고 화폐이론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 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성숙과 더불어 화폐제도와 금융제도가 빠른 속도로 변화되어 감에 따라 화폐수량설은 점 차 그 타당성을 상실해 갔다. 특히 금이라는 상품화폐 이외에 어음, 은행권 등의 信用貨幣가 등장하고 금융제 도가 발달하면서 화폐공급의 외생성, 유통속도의 안정성 등과 같은 조건이 현실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산업 자본주의 초기의 시대적 요구에 걸맞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화폐수량설이 경제 이론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고수했지만,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확대되면서 자연히 여러가지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발달된 금융제도에 알맞는 화폐이론을 제시하기 위한 노력 역시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18, 19세기에 걸쳐 화폐수량설에 대한 비판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18세기 스튜어트(J. Stewart)에서 시작된 비판은 손톤(H. Thornton), 투크(T. Tooke) 등의 은행학파(banking school)와 마르크스 (K. Marx)로 이어졌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빅셀(K. Wicksell), 하이예크, 케인즈, 힉스 등의 대가들에 의하 여 화폐수량설적 사고의 단순성과 비현실성이 지적되고 비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자유주의 경제학자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프리드만은 고전적 형태의 화폐수량 설에 현대이론의 옷을 입힌 新貨幣數量說을 제창하여 다시금 학계와 실무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다. 그는 방대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화폐를 적절히 정의해 주면 통화량과 물가수준 사이에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상관 관계가 있음을 주장했다. 프리드만의 노력으로 화폐수량설은 또 한번 강한 호소력을 지니고 대중에게 접근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돈의 가치를 관리해야 하는 중앙은행의 정책당국자들은 그들 특유의 보수적 성향에 따라 화폐수량설을 정책적으로 의미있는 이론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여러 학자들의 탁견은 자본주 의의 성숙과 금융제도의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더욱 현실적인 상황으로 뒷받침되었 다. 이에 따라 프리드만의 논의는 물론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게 되었다. 2. 하이예크의 貨幣數量說 批判 화폐수량설에 대한 하이예크 비판의 요점은 그것이 상대가격체계의 변화를 고려하는 미시경제학적인 기초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화폐수량설에 의하면 화폐이론은 물가수준, 즉 화폐가치에 대한 이론으로 축소되어 버린다.

그러나 화폐이론의 주된 관심이 화폐가치의 결정에 국한되어서는 곤란하며, 화폐가치는 실물부문과 관 련을 맺는 범위 내에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하이예크의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실물부문의 활동, 즉 생산과 소비활동에 보다 중요한 상대가격체계를 무시한 화폐수량설은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해악이라고 할 수 있는 相 對價格體系의 변화에 따른 자원배분의 왜곡과 실업, 생산구주의 변동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 제주체들의 기대 등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F.A. Hayek, Prices and Production, London, 1935. }} 하이예크에 따르면, 현실경제에서 통화량의 변화는 예외없이 상대가격체계의 변화를 수반한다.

그리고 소득 의 구매력이나 욕망을 충족시키는 수단의 선택은 모두 상대가격체계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화폐 이론은 상대가격체계의 분석을 포함해야만 한다. 그러나 화폐수량설은 통화량의 변화가 물가수준에 영향을 미 칠 뿐이며, 상대가격체계와 산출수준은 일시적인 마찰이나 교란요인에 의하여 부수적으로 발생한다고 본다. 따 라서 화폐수량설은 결코 완전한 화폐이론이 될 수 없다. 화폐수량설은 경제여건이 변화해도 물가수준이 불변이 면 상대가격체계와 산출수준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즉 화폐가치만 불변이면 자원배분과 산출수 준은 어떠한 변화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예크는 소비자의 기호변화, 기술변화 등과 같은 요 인에 의하여 상대가격체계와 산출수준이 변화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물부문의 변화가 물가수 준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화폐수량설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실성 없는 이론을 제시할 뿐이라고 하였다. 통화량의 변화가 실물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배제하고 실물부문의 요인이 상대가격체계와 산출수준, 생산구 조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하여 하이예크는 '貨幣中立性'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그것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고 보았다.

 첫째, 화폐의 흐름, 즉 통화량과 유통속도의 곱은 불변이다.

 둘째, 모든 시장가 격은 완전신축적이다.

 세째, 화폐단위로 장기계약을 맺을 경우 미래가격의 움직임을 사전에 거의 정확히 예측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러한 조건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통화량의 변화는 반드시 상대가격체계의 변화를 통한 자원의 재배분효과와 산출수준, 생산구조의 변화를 야기한다는 것이 하이예크의 입장이다.

그러나 패틴킨(D. Patinkin) 이후, 통화량의 변화가 장기적으로는 상대가격체계와 산출수준에 영향을 미치 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화폐중립성의 개념이 이용되면서 그 의미는 변질되었다. 현대 화폐이론에서 는 균형상태에서 통화량, 물가수준 등의 명목변수가 동일한 비율로 변화하면 실질변수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를 화폐중립적이라고 한다. 화폐중립성이라는 용어는 동일하지만, 오늘날의 화폐이론에서는 화폐중립 성이 통화정책의 무력성을 주장하는 근거로서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하이예크의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 다.

貨幣가 重要하다는 사고방식이 보편화하면서 거시적인 의미에서의 화폐중립성이 현실과는 부합되지 않는다 는 사실은 모두가 받아 들이게 되었지만, 아직도 하이예크가 제시한 미시적인 의미에서의 화폐중립성이 현실과 는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형태의 화폐수량설을 극복하고, 통화량의 변 화가 물가수준과 산출수준에 미치는 효과는 분석하고 있지만, 하이예크가 화폐경제의 본질적인 분석대상이라고 지적한 통화량의 변화가 상대가격체계와 생산구조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분석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 다.

또한 하이예크는 화폐수량설에는 통화량의 변화가 물가수준의 변화로 나타나기까지의 경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음을 지적하였다. 깡띠용(R. Cantillon)이 그러한 경로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너무 미비하다고 보았다. 깡띠용은 화폐(금)량의 증가는 그 생산업자의 소득을 높이고, 그들의 지출이 증가하면 가격상승이 일 어난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전달경로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몇가지 재화의 가격상승에 대한 설명일 뿐이며, 전반적인 물가수준의 상승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였다.

  하이예크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통화량의 변화는 절대가격수준과 상대가격체계의 동시적 변화를 야기 하며, 그러한 변화는 일정시점에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시차를 두고 진행되는 연속적인 과정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러한 인식하에 통화량의 변화가 실물부문에 미치는 영향을, 가격의 변동시차로 인해서 발생하는 상대가격체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생산구조의 변화로 설명하였다. 그러나 하이예크는 이러한 시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라파(P. Sraffa)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 도 하였다.

그러한 시차는 힉스가 주장한 것처럼 임금상승 이후에 즉시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는 '消 費時差'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이예크가 강조한 시차는 개별 경제주체들이 통화량의 변화가 야기하는 절대가격과 상대가격체계의 변화에 대한 추가정보를 습득하고 기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情報傳達時 差'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하이예크는 지식의 분업이라는 독창적인 개념으로써, 현대사회의 경제주체는 단편적인 불완전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며 시장가격을 통하여 경제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한 다는 사실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화폐부문의 교란이 실물부문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 하이예크는 오스트리아학파 의 전통적인 분석개념인 우회생산과정의 개념을 이용한다. 통화량이 증가하면 자발적인 저축이 증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자율이 하락한다. 통화량의 증가에 의한 이자율의 하락이 인위적이기는 하나 가격으로서의 이자 율의 하락은 기업가의 기대와 소비자의 적응에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산구조의 확대, 즉 우회도의 증가라 는 실물부문의 변동을 낳는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단기적인 것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는 경제주체들이 잘 못된 기대를 조정하면서 생산구조가 다시 축소되는 과정이 발생한다.

이러한 생산구조의 축소과정은 물가수준 의 상승 뿐만 아니라 실업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과정이다. 따라서 통화량의 변화는 상대가격체계와 임금의 변화를 통하여 생산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자원과 노동의 배분을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 하게 된다는 것이 하이예크의 결론이다. 3. 케인즈의 貨幣數量說 批判 케인즈의 화폐수량설에 대한 비판의 요점은 그 전달장치의 오류에 대한 것이다. {貨幣論}(Treatise on Money ; 1930)에서는 통화량이 이자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화폐수량설에 대한 비판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케인즈는 기본방정식을 통하여 물가수준이 화폐수량설의 주장과는 달리 화폐 적인 요인보다는 비화폐적인 요인(예를 들어, 건축, 투자, 생산비 등)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비 판의 내용은 {일반이론}의 출판과 더불어 분명해졌다. 케인즈는 통화량의 변화가 총지출수준에 직접 영향을 미 쳐서 물가수준을 변동시킨다는 화폐수량설의 전달장치는 오류라고 지적하였다. 그는 통화량의 변화가 일차적으 로는 이자율에 영향을 주고 이에 따라 투자수요를 통하여 총수요가 변화하게 되는데, 이는 물가수준보다는 산 출수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파악하였다. 케인즈에 의하면 화폐이론의 근본적인 문제는 화폐부문과 실물부문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항등식이나 통계 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공식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물가수준이 결정되는 경로와 어떤 균형에서 다른 균형으 로 이행하는 과정에 대한 동태분석을 하는 것이다.{{) J.M. Keynes, Treatise on Money, Macmillan, 1930. }}

그러나 기존의 화폐수량설로는 이러한 동태분석이 불가능 하며, 화폐수량설에 표시되어 있는 물가수준(이를테면 MV =PT 나 M=kPy 에서의 P)은 구매력의 정도를 제대로 나타내는 소비자물가수준이 아니라 '잡탕물가수준'(hotch-potch price level)에 불과하며 타당한 경제적 의미 를 갖지 못한다고 한다. {화폐론}에서 케인즈의 목적은 물가수준의 변동(그리고 경기변동)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제시하는 데 있 었다. 그것은 고전적인 화폐수량설의 교환방정식을 대체하는 기본방정식의 형태로 제시되었다. 이제 기본방정식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자. 어떤 기간 동안의 총소득을 E 라{{) 이것은 생산요소에 지불된 보수의 합계로, 달리 표현하면 정상이윤울 포함한 생산비의 합계이다. 따라서 기업의 초과 이윤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 하고 그 중에서 투자재의 생 산에서 얻는 소득(신투자의 생산비)을 I' 이라고 하자. 따라서 E-I' 은 소비재의 생산비가 된다.

그리고 소비 재의 생산량(생산된 것은 모두 판매된다고 가정한다)을 R, 그리고 투자재의 생산량을 C 라고 하자. 그러면 총 생산량은 양자를 합계한 것이 된다. 즉 {{{{O=R+C }} }} 이다. 소비재의 가격수준을 P 라고 하면, 총소비지출은 PR 이 되고, {{{{E C over O (= I') }} }} 는 신투자의 생산비가 된다. 소비재에 대한 지출은 소득과 저축의 차액과 일치하므로 {{{{PR = E - S = E over O (R+C)-S= E over O R + I'-S }} }} 이며, 따라서 {{{{P= E OVER O + I'-S OVER R }} }} 가 된다. 이것이 '第 1 基本方程式'이다. 노동자의 노동단위당 보수율을 W 라고 하고(따라서 W 의 역수 (1/W)는 화폐 한단위의 노동구매력이 된다), 생산단위당 보수율을 W1 이라고 하자. W1 을 '능률보수율'로 부르기도 하는데, 능률계수를 e 라 하면 W = eW1 이 된다.

제1기본방정식으로부터 {{{{P= W_1 + I'-S OVER R = 1 OVER e W+ I'-S OVER R }} }} 가 도출된다. 즉 소비재의 가격수준은{{) 여기서 주의하여야 할 것은 P 가 균형가격이 아니라, 현실의 시장에서 관찰되는 불균형가격이라는 점이다. }} 두가지 요인, 즉 능률보수율(생산단위당 보수율 W1) 및 투자비용과 저 축의 차액 (I'-S) 에 의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소비재가격이 장기적으로 안정되기 위해서는 능률보수율이 변화 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투자비용과 저축이 일치되어야 한다. I'-S 의 변화는 곧 재화시장에서의 가격변동을 가져온다. 예컨대 소비지출의 증가 (S 의 감소)로 인한 물가 상승이 있다면 그것은 현대적 용어로 需要牽引型의 물가상승이 된다.

힉스의 말을 빌린다면 이것은 伸縮價格의 변동에 의한 물가상승이다. 이에 반하여 W1 의 상승으로 인하여 물가가 상승한다면 이는 費用引上型의 물가상 승이 된다. 힉스의 이른바 非伸縮價格의 변동에 의한 물가상승이다. 이와 같이 기본방정식에는 두가지 종류의 물가상승이 나타나 있다. 케인즈는 대체로 I'-S 로 인한(수요견인으로 인한) P 의 상승이 먼저 오고 (제1단 계), 그 다음에 기업이윤이 발생하면 고용을 늘리게 되고 (제2단계), 이것이 결국 W1 의 상승을 가지고 온다고 (제3단계) 생각하였다. 그러면 소비재와 투자재를 합친 모든 재화의 가격수준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총생산의 물가지수를 , 신투 자재의 가격수준을 P' 이라 하고 신투자의 가치(신투자의 생산비와는 다르다)를 I(= P'C) 라고 하면 {{{{ = PR+P'C OVER O = (E-S)+I OVER O = E OVER O + I-S OVER O }} }} 가 된다. 이것이 '第 2 基本方程式'이다. 이 기본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변형시킬 수 있다. {{{{ = W_1 + I-S OVER O = 1 OVER e W + I-S OVER O }} }} 여기에도 신축가격의 변동 I-S 와 비신축가격의 변동 W1 으로 인한 가격변화가 표시되어 있다. 화폐수량설에서는 화폐는 생산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고전학파의 이분성이 이것을 말해 준다. 이에 대하여 케인즈는 화폐적 요인, 즉 화폐공급량의 변화나 화폐수요의 변화는 이자율을 변화시킴으로써 실물부문 에 영향을 준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고전학파의 이론을 화폐의 역할을 무시하는 實物交換理論이라고 부르고, 화폐가 실물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자신의 이론을 貨幣生産理論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한 케인즈의 사고를 이해 하는 데도 도움이 되므로 그가 쓴 글의 일부분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나의 의견으로는 공황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는, 또한 공황이론이 매우 불만족스러운 주된 이유는 화폐 생산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론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물교환경제와 화폐경제의 차이를 논할 때 사 람들은 화폐의 사용이 교환을 수행하는데 편리한 수단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화폐는 매우 편리한 도구이 기는 하나 그 효과는 일시적이고 중립적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화폐는 단순히 직물과 소맥 또는 통나무 배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하루의 노동과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하여 필요한 하루의 노동을 연결시켜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교환당사자의 관념에는 화폐를 매개로 하는 교환은 실물교환의 경우와 본질적으로 다를 수가 없으 며, 교환당사자들의 동기와 의사결정을 수정시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화폐가 사용되고 있 는 경우에도 화폐는 중립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내가 생산의 화폐이론이 결여되고 있다고 말할 때에는 이상과 같은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은 아니다.

화폐를 사용하면서도 화폐가 실물거래나 실물자산거래 사이의 중립적인 연결물로만 사용되고 사람 들의 동기와 의사결정에 대하여 아무런 작용도 하지 않는 경제는 - 보다 적절한 표현이 없으므로 - 실물교환경 제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내가 결여되어 있다고 하는 이론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화폐가 그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사람들의 동기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쉽게 말해서 경제상태에 능동적인 작용을 하는 경제이론 이다.

이에 의하면 최초상태와 최후상태 사이의 화폐의 움직임에 대한 지식없이는 장기로나 단기로나 사태의 진전의 경로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화폐경제라고 할 때에는 당연히 이것을 뜻하여야 하는 것이다."{{) J.M. Keynes, "A Moneytary Theory of Production" (1933), Collected Writings of John Maynard Keynes, Vol. 14, pp.408-411. }}

  케인즈는 한마디로 말해서 화폐가 생산이나 고용에 대해 중립적이 아니고 생산에 대하여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의 주요경로는 민간의 유동성선호와 화폐공급량에 의해 결정되는 이자율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마샬(A. Mashall)류의 평면적인 화폐관의 테두리 속에서 화폐의 능동적인 측면을 인식한 것으 로 주목할 만한 화폐관의 진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는 화폐수요의 동기를 명확히 구분하여 논의를 진행시킴으로써 화폐수량설의 기계적 사고가 간과한 측면을 예리하게 지적하였다.

다음 식을 보자.{{) 케인즈 자신은 이러한 식을 제시한 적은 없다. 이 식은 그의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해 본 것이다. 조순, {일반이론} (역서), 비봉출판사, pp.199-200, 1985. }} {{{{M OVER P = M_1 OVER P + M_2 OVER P = k_1 y + f(R-R^* ) }} }} 여기서 R 은 현재이자율이고, R* 는 정상이자율이며, k1 은 화폐의 유통속도이다.

M1 은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 폐수요로 소득수준과 비례관계에 있다고 가정된다. M2 는 투기적 화폐수요를 나타낸다. 투기적 화폐수요 함수 인 f( ) 에 R-R* 가 포함된 것은 정상이자율과 관련된 미래이자율의 변동추이가 화폐수요에 영향을 미친다는 케인즈의 독특한 입장을 반영한다. 가령 소득수준이 증가할 때 위 식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이 균형상태에서 M/P 의 증가를 의미한다는 화폐수량설의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총체적인 통화량 (P/M, 단 M = M1 + M2)에는 변함없이 M1/P 의 증가분이 M2/P 의 감소로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의하면 M/P 의 변화 없이도 M1/P 과 M2/P 의 구성에 따라 명목소득수준은 바뀔 수 있어 화폐수량설과는 다른 측면을 보여 준다. 케 인즈는 자신의 유동성선호설을 바탕으로 화폐부문과 실물부문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고전학파에 의하면 이자율이란 대부시장의 균형상태에서 자본의 한계수익률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자율은 생산과정에서 자본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수로서의 의의가 있다. 그러나 케인즈는 자본의 총량과 그에 따른 한계수익률에 의하여 이자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므로 자본의 희소성에 대한 대가로서 이자율을 설 명하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화폐부문에서 주어지는 이자율에 의하여 자본의 총량이 규제된 다는 의미에서 한계생산력설은 의미가 없고, 자본총량이 화폐부문에서 결정되는 이자율에 의해 결정되므로 화 폐가 실물부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침을 강조하였다. 3. 하이예크와 케인즈의 通貨政策 提案 하이예크 경기변동이론의 기본명제는 경기변동은 화폐적 요인에 의하여 유발되지만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 은 실물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하이예크는 화폐가 중립적인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였다.

화폐 가 중립적이라는 것은 모든 재화의 교환비율이 화폐가 價値尺度(numeraire)로서의 기능 이외에는 수행하지 않 을 때의 교환비율과 동일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中立貨幣'(neutral money)가 보장되려면, 통화량과 유통속 도의 곱, 즉 화폐흐름이 불변이고, 모든 시장가격은 완전신축적이며, 미래가격에 대한 정확한 기대가 가능하다 는 조건이 필요하다. 따라서 하이예크는 중립화폐란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상황임을 지적하고 중립화폐는 결코 정책목표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실물부문에 대한 정보를 중앙은행이 완전히 보 유할 수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관리통화제도는 아무리 세심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고 보았다. 따라서 하이예크는 가능한 한 중립적으로 운영하는 통화정책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하였다. 통화정책의 주요한 임무 중의 하나는 통화량과 소득수준이 너무 큰 폭으로 변동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며, 주요 정책방향을 고용에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통화정책의 제일목표는 통화가치의 안정에 두어야 한 다는 것이다. 오늘날 종종 통화당국에 대해 가해지는 정치적 압력, 즉 단기적으로는 정치에 유리하지만 장기적 으로는 사회에 유해하기 짝이 없는 그러한 정책을 취하도록 하는 압력으로부터 통화당국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만은 통화당국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스스로의 힘을 악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어느 해 통화 량을 어느 정도 늘리면 좋은가, 또 늘리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관한 규칙을 미리 정해 놓음으로써 통화당국의 재량권을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하이예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프리드만의 경우 이것이 실제로 가 능하다고 보는 것은 다분히 통계상의 목적에 따라 '통화'와 '그 이외의 것'을 명확히 구별짓는 습관에 젖어 있 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별은 현실세계에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각한 유동성위기나 신용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통화당국이 모든 類似通貨(통화에 가까운 것, 즉 어음 따위)의 교환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통화당국이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러나 하이예크는 그러한 준칙이 자동조절시스템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프리드만에 동조한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통화신용정책은 모두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지적하였다. 그 결과 자본주의사회는 지극히 불안정한 상태가 되었으며 어떻게 손을 써도 호전될 수 없을 만큼 사태는 악화되어 버 렸다고 하였다.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라는 것이다.

하이예크는 이제 다음 세 가지 해결책 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았다.

첫째, 고삐풀린 인플레이션이 그대로 진행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결 국 모든 경제활동이 완전히 파국에 이르기까지 내버려 두는 일.

둘째, 임금과 물가를 통제하는 일. 그러나 이 렇게 하면 일시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의 억제효과가 있겠지만 전체주의적인 경제체제의 길을 걷게 된다.

셋째, 최후수단으로 통화량의 증가를 단호하게 중단시키는 일. 이것은 심각한 실업을 발생시키겠지만 결국은 과거의 인플레이션 때문에 노동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나타내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앞의 두가지 방법 을 택하는 한 노동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상은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관리통화제도하의 화폐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하이예크는 화폐발행에 대한 정부의 독점권을 포기하고 민 간은행이 자유롭게 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자유은행업(free banking system)에 관한 논의로 발전되었다. }} 그렇게 되면 실물부문의 정보가 금융시장 에서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화폐가 보다 더 중립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보았다.{{) F.A. Hayek, Denationalization of Money, Chicago, 1974. }}

케인즈는 실업을 줄이기 위한 통화정책의 유용성에 대하여 깊은 회의를 가졌었다. 화폐수량설을 비판하고 통화량의 증가는 이자율하락을 통해 투자를 확대시켜 고용수준을 확대한다는 傳達經路를 밝혔지만, 그러한 전 달경로의 고리가 너무 길고 약해서 쉽게 끊어진다고 보았다.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아니라 주로 재 정정책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이론}에 표명된 그의 정책관이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따라서 케인즈는 자본주의의 장기적인 침체를 막기 위해서는 통화량의 조절 보다는 低利子率政策이 바람직 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자율은 유동성선호와 통화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경제주체들이 앞으로 이 자율이 낮게 유지되리라는 기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통화정책을 쓰고 통화공급을 충분히 증가시켜야 한다는 것 이다. 이자율은 유동성선호라는 심리적 요인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이자율이 앞으로 어떤 수준으로 유지되리라 예상된다면 결국 이자율은 그 수준에서 머물게 된다. 따라서 일괄성 있는 저이자율정책을 지속한다면 이자율은 결국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케인즈는 통화당국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이유 때문에 저이자율정책을 채택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첫째, 중앙은행 정책담당자들은 너무나 보수적이어서 통화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뿐 아니라, 완전고용을 달 성하는 데 저이자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 둘째, 공개시장조작에서 중앙은행 은 전통적으로 주로 단기국채를 매매한다. 그러나 투자를 직접 증가시키기 위해서는장기이자율과 관련이 있는 장기국채나 회사채를 매매하여야 하는데 중앙은행은 관습상 이를 피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중앙은행 정책담당 자들의 안일한 경제관과 일처리가 바로 저이자율정책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케인즈가 통화정책에 회의를 갖는 또 다른 요인이 된다. Ⅳ. 맺음말 하이예크와 케인즈 모두 현실경제의 개인은 불완전한 정보만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기대를 형성 하여 경제활동을 영위한다고 파악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러한 개인들의 경제활동이 自由放任하의 시장메 커니즘을 통해서 거시적 차원의 조정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하이예크는 지 식의 분업이란 개념을 이용하여, 개인에게 널리 분산된 지식이나 정보를 어떤 특정한 개인이나 조직이 모두 파 악할 수는 없고 가격에만 응축된 형태로 반영되기 때문에 시장메커니즘만이 그러한 조정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케인즈는 개인의 심리적 요소에 의존하는 경제활동을 시장메커니즘도 적절히 조정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파악하였다. 따라서 케인즈는 건전한 의식과 능력을 지닌 엘리트들이 제안하는 정책에 따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경제에 介入해야만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자유주의와 개입주의로 요약할 수 있는 하이예크와 케인즈의 철학적 차이는 경제문제를 인식하는 시각에 있 어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하이예크는 완전정보란 시장가격 이외의 어떤 조직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長期的인 視覺을 갖고 통화가치의 안정과 시장메커니즘의 유지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을 통한 실업해소의 노력은 필연적으로 자원과 노동배분의 왜곡을 낳고 궁극적으로는 대량실업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케인즈는 장기에는 우리 모두 사바세계를 떠나고 말기 때문에 短期的인 經濟政 策을 통하여 마치 치과의사가 치아에 대한 처방을 내리듯 섬세한 조정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경기변동론을 둘러싼 하이예크와 케인즈의 논쟁은 케인즈가 {화폐론}을 발표한 이듬해인 1931년 하이 예크가 런던대학에 부임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Economic Journal의 편집자였던 케인즈는 하이예크의 {가격과 생산}(Prices and Production ; 1935)에 대한 비평을 스라파에게 부탁했고, 당시 Economica의 편집인이었던 로 빈슨(J. Robinson) 여사는 케인즈의 {화폐론}에 대한 비평을 하이예크에게 부탁했다.

이로서 힉스가 '드라마' 라고 표현한 하이예크와 케인즈의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케인즈의 {일반이론}이 나오면 서 이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過少投資 過少消費'라는 케인즈이론은 '過剩投資 過剩消費'라는 하이예크이론 을 꺽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스테그플레이션이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서 미시적 분석과 자원배분의 문 제를 강조하는 하이예크이론이 다시금 빛을 보고 있다.

自由主義와 介入主義, 長期와 短期라는 두 갈래의 논의는 경제이론의 기본을 이루는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 다. 어느 한 쪽 논의가 일방적으로 옳고 다른 한 쪽의 논의는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따라 선택 내지는 조화를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현상에 대한 우리의 부족한 이해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개선되어 가리라 생각한다. 끝으로 진정한 화폐이론은 통화량의 변화가 상대가격체계를 통하여 자원배분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는 것 이어야 한다는 하이예크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