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논단] 테러란 `민간인 향한 전투행위`


미국은 지난해 10월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하면서 이 전쟁을 `악과의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천하무적인 미국이라도 `악`을 공격할 수 있는가.전쟁은 결국 일개 정권(탈레반)과의 싸움이 됐을 뿐이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하자 세계 각국의 권력자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정적을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제각기 또 다른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제멋대로 정의했기에 일어난 사태였다. 미국은 테러를 `사악한 자들이 저지르는 행동 그 자체`로 정의했다. 이 정의 하에선 테러행위에 깔린 정치적 주의.주장은 전혀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예컨대 `사악한` 카슈미르 분리주의 게릴라들의 행동은 곧바로 테러다. 그들을 돕는 파키스탄 운동가들과 정부요원들의 행동도 테러다. 반면 독립을 열망하는 카슈미르 지역을 반세기 동안 지배해온 인도 정부의 행위는 사악한 자들에 맞선 것인 만큼 테러가 아니다.

`테러`에 대한 이같은 정의에 따라 미국이 카슈미르 분쟁에서 자기편에 섰다며 인도는 기뻐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미국 덕에 체첸과의 전쟁이 반테러 전쟁으로 인정받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테러의 진정한 정의는 무엇인가.`다음 두가지 이유 때문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정치.군사적 성격의 전투행위`다.

첫째, 테러리스트들은 진정한 공격목표인 권력자들에게 결코 접근할 수 없다. 체첸 민족주의자들은 푸틴을 암살하려 하지만 크렘린궁의 경호망을 뚫을 수 없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지하드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를 사살할 수 있다면 결코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사살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면 결국 사람들을 공격해 공포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이스라엘이 최근 20여년만에 처음으로 레바논에서 철수한 것은 이스라엘 거주민들이 헤즈볼라의 미사일에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여태껏 안전지대로 알았던 레바논에서 젊은 이스라엘 병사들이 잇따라 숨진 데 충격을 받아 정부에 대책을 촉구했고 결국 군 철수가 실현됐다.

이처럼 피압박 민족이 적에 대항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효과적 무기가 테러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아일랜드인들에게 물어보라. 영국으로부터 아일랜드를 해방시켜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베트남인들에게 물어보라. 프랑스로부터 베트남을 해방시켜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2차 세계대전 초반 독일에 패배를 거듭한 영국은 전쟁기간 내내 독일의 도시들을 줄기차게 `테러`(폭격)했다. 궁지에 몰린 영국에 폭격은 유일한 반격수단이었다. 당시 영국의 폭탄은 군사시설과 민간인 거주지를 구별할 만큼 정확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여기에 그럴싸한 구실을 붙였다. "독일의 잔혹한 전쟁욕을 꺾기 위해 부득이 민간인을 폭격한다." 미국도 영국을 본받아 일본 도시들에 똑같은 테러를 가했다.

2차 세계대전은 유럽 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군인의 민간인 살육이 정당화된 `절멸의 전쟁`이었다. 그러나 군인들 대신 민간인(테러리스트들)이 민간인을 살육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니 이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윌리엄 파프<칼럼니스트.IHT 1월 10일자 기고>
정리=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