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정희식 가치관'을 장사 지낸다"

[박정희라는 쓰레기]


10·26사태를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개봉 전부터 화제다.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이 영화는 대통령을 암살한 중앙정보부장(백윤식)과 중정요원 주과장(한석규)을 둘러싸고 1979년 10월 26일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그렸다. ‘자우림’의 리드보컬 김윤아심수봉역,송재호가 고 박대통령역을 맡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등 도발적인 주제를 다뤄왔던 임상수 감독의 작품으로 시나리오도 임감독이 직접 썼다.

이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 씨가 시나리오를 검토한뒤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영화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더욱 주목 받았다.

박지만 씨의 주장처럼 이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을 욕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을까.

임 감독은 11일 발매된 주간동아에 실린 영화평론가 하재봉씨와의 인터뷰에서 “아니다”라고 강하게 손사레를 쳤다.

그는 당초 어떤 연유로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우리에게 사실로 알려진 것은 계엄차하의 보안사 수사기록 뿐이다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임 감독의 이 말속에 답이 들어있다.

그는 “팩트는 ‘박 전 대통령의 죽음’ 뿐이고 나는 아주 디테일하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찍었다”고 밝혔다.

재판기록 등 예전 자료가 진실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당시 현장 상황을 추론, 새로운‘각본’을 만들었다는 것.

그는 “보안사 수사기록은 당시 보안사 수사관이 쓴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며“아마 내가 쓴 시나리오가 훨씬 더 질이 높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또한 그는 “그날 상황을 내가 다 아는 것처럼 찍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놀았을까? 나는 자문하며 상황을 만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사건 당시 상황은 이렇다.

“그날 궁정동 연회 참석자는 대통령, 경호실장, 비서실장으로 모두 의젓하게 행동했을 것 같지만, 알려진 것과는 달리 우왕좌왕 모두들 당황하는 코미디였을 것이다.”

구체적인 장면 설명이 이어진다.

“연회장면에서 남자들이 먼저 술 먹고 있었고 여자 두 명이 나중에 허겁지겁 들어온다.박정희가 첫 발을 맞았을 때 모두 다 사라지고 여자 둘 만 남았다. 사실 그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가장 의연하고 인간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두 여자다.”

그는 “심수봉씨가 이 영화를 보면 좋아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영화에는 박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도 일부 담겨있다.

임 감독은 “당시 궁정동 만찬에 어떤 연예인이 다녀갔다는 유언비어가 파다했다”면서 “그러나 그 장면을 이 영화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고 살짝 건드렸다.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시비를 거는 순간 자기들이 수렁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정희는 일본에 갔을 때 공식자리에서 통역 없이 일본어를 써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며 “영화 속에서 박정희는 결정적인 순간에 일본어로 말한다”고 귀띔했다.

임 감독은 영화 제작 동기를 “이미 백골이 된 존재(박 전 대통령)를 꺼내서 모욕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유령처럼 출몰하는 박정희적 가치관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25년 전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2005년 오늘까지 박정희로 상징되는 가치관 등이 여전히 남아서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다”며 “그런 것을 장사지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박 전 대통령 유족들과 당시 관련 생존자들에게는 “인간적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어떤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든 일단 건드린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상처를 준다”며 “개개인을 비난하려 하지 않고,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지만 씨가 법원에 제출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서 내용이 11일 일부 밝혀졌다.

가처분 신청서에서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및 인격권침해라고 지적한 장면은 대략 6곳.

그 중 ‘시해현장 장면에서 총격받은 고인이 영화 친구의 ‘많이 묵었다 아이가’를 연상시키는 대사(나 벌써 한 방 먹었다 아이가, 박장군)를 사용,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은 많은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고인이 △업무를 집행하면서 측근들에게 일본어를 많이 사용하고 △연회석에서 일본가요를 즐겨듣는 것으로 설정해 관객들이 고인을 사생활이 문란하고 일본을 동경하는 매국적 인물로 오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임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나 역시 영화 후반작업을 하고 있어 최종본을 보지 못했다"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화의 구체적인 부분까지 지적하는 것은 감독에 대한 모욕”이라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박지만씨 입장에선 괴로운 기억을 환기시키는 요소가 있을테고,야당 대표인 딸에게 정치적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면서도 “가처분신청으로 인해 한 편의 영화를 세상에 공개하기도 전에 묻어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는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고인은 박씨의 아버지이기 전에 한국 현대사의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2월 3일 일반에 공개될 예정인 이 영화는 4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갔으며 300만 이상의 관객을 기대하고 있다고 주간동아는 전했다.

박해식 동아닷컴기자 pistols@donga.com